“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중국이 대화에 나서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중 관계 회복의 열쇠는 결국 한반도 문제 해결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제신문 창간을 맞아 본지와 만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남북한이 대결하면 한중 간 협력의 여지가 줄어든다면서 “한국은 싫더라도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이 나서서 북미 관계가 호전되면 남북한도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고 이는 한중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현재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남북 관계가 회복되면 중국과 미국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올해가 한중 수교 25주년이라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양국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진 교수는 “한중 관계 회복의 관건은 사드 문제를 얼마나 현명하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사드 갈등이 계속되면 양국 관계는 상당 기간 진통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보다 대북정책에서 훨씬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남북 관계가 원활했을 때 한중 관계도 좋았던 만큼 새 정부가 남북 관계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중 관계가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 상황에서 한국 새 정부가 출범했다. 향후 한중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나.
△현재의 양국 간 갈등은 모두 사드 문제에서 비롯됐다. 사드 이슈는 북한 핵 문제는 물론 중미·한중 관계, 한반도 문제 등 모든 영역에 얽혀 있다. 중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이었고 한국 새 정부와 사드 이슈 등에서 큰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취임 후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언급한 강경한 발언은 중국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태도를 한국 주권에 대한 개입으로 보고 대응하는 것 같다. 사드 이슈에서 양국이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한중 관계는 이전보다 후퇴할 수밖에 없고 양국 관계는 오랫동안 진통을 겪을 것이다.
-사드 이슈는 양국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 등의 이해가 얽혀 있는 사안이 아닌가.
△그렇다. 사드 이슈에는 한중·미중·북중·남북한 등 여러 복잡한 관계 속의 힘든 문제들이 응축돼 있다. 결코 풀기 쉬운 방정식은 아니다. 양국(한중) 수교 이후 물밑에 있던 한미 동맹과 북중 관계라는 구조적 갈등이 사드를 통해 표출된 것으로 단순히 양국 관계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축소판으로 여러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중국은 남북한의 대화, 북미 간 대화가 모두 북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한중 협력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북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나.
△한국과 북한이 갈등과 대결로 나아가면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협력 공간이 좁아진다. 반대로 남북한이 대화와 협력으로 나아가면 한국과 중국도 협력할 분야가 늘어날 것이다. 자연스럽게 양국 관계도 진전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목적은 명확하다. 핵미사일로 미국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양보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그 목적에 이르지 않으면 핵과 미사일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싫더라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나서면 남북 관계도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다.
-8월에는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돼 양국 관계 변화의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양국 간 정상회담이 이른 시일 내에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금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독일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만났고 양국 간 기본입장은 어느 정도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문 대통령이 최근 보여준 대중 강경 입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사드 이슈를 포함해 양국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변화의 계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양국 관계가 전방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에 나서면서 추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 도발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북한의 핵전략은 이제 소형화 전략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핵탄두 소형화는 본격적인 실험을 하지 않고 시뮬레이션 실험으로 끝낼 수도 있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진전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촉각을 더 곤두세우고 있다. 이웃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ICBM보다 핵실험이 더 큰 위협 요인인 것이다.
-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크게 개선됐던 미중 관계가 다시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 관계 악화가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트럼프 시대의 미중 관계는 불확실성이 특징이다.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전략은 갈등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는 심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갈등과 충돌의 장은 대체적으로 중국 주변국에서 이뤄지는데 가장 전형적인 장이 한반도다. 미중 관계가 대립과 갈등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한반도는 그 틈새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중국은 오히려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향후 국제 외교 분야에서 중국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존 동맹국들과 새로운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외교적으로나 통상 측면에서 고립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 같은 고립은 결국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국의 역할을 부각시킬 것이다. 한국도 이 과정에서 동북아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북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대국 눈치를 보고 남북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회복되면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올가을 중국의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전 세계의 관심이 크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중국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19차 당대회는 올해 중국의 가장 큰 정치행사다. 중국의 외교도 이 행사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는 내치나 외교 부문에서 큰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 이슈의 경우 기존 입장인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대회에서 국가 목표에 관한 큰 전략적 틀이 나오면 경제계획 등에서도 세부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새 지도부 밑에서 개혁 개방, 시장 개혁의 폭을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일부 진통이 있을 수 있지만 개혁과 개방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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