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눈에 새겨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눈을 감아도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손님이 개밥그릇에 담긴 오줌을 핥아 먹으라며 머리채를 잡아 그릇에 처박은 날이라든지, 숨 참는 법을 배우라며 물을 채운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은 날, 납치당해서 살려달라고 빌어야 했던 날. 글로 옮겨 적기에 너무 힘든 것들.
#2. 언니들 사이에서 쓰는 은어 중 ‘자폭단’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자폭하는 구매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계약에도 없는 가학적인 요구를 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서비스 개판이라며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언니들이 아무리 잘 해줘도 ‘기분이 나쁘다’며, ‘범죄자는 처벌 받아야 한다’며, ‘돈을 지불하기 싫다’며, ‘경쟁업소를 문 닫게 할 거라’며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성판매를 하고 있기에 시민일 수 없다. 내가 겪은 폭력에 대해 신고할 수 없고 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없고 사회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지난달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들 안녕하십니까’에 올라온 글이다. 성산업 종사자들이 성매매 과정에서 직접 겪은 경험담을 연재하는 이 페이지는 지난달 조회수 3만명을 기록하고 800여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과거 여성단체의 입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들었던 성산업의 폐해를 성산업 종사자들이 직접 증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50여개 남짓한 공개 게시글 하단에는 ‘충격적이다’, ‘성매매 산업 합법화해야 하냐“는 댓글 토론이 연일 벌어졌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이 페이지를 ‘음란물 공유 페이지’로 규정하고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해당 조치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 5일 해당 페이지의 관리자에게 “음란물 공유를 금지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했다”며 “안전하고 서로 존중하는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비공개로 전환한다”고 통보했다. 페이스북은 관리 규정에 어긋난다고 보는 페이지를 관리자의 동의 없이 비공개로 전환할 수 있다.
이에 ‘성노동자대나무숲’, ‘모던바 근무자의 업무일지’ 등 성산업 내 인권침해를 함께 알려 온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들과 반성착취여성행동·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등 여성단체들은 페이스북코리아의 행동을 규탄하며 해당 페이지 공개 전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페이지 제목과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 상에 퍼진 서명운동은 개시 이틀 만에 7일 오후 5시 기준 1,000명을 돌파했다.
성노동자유니온과 해당 페이스북 관리자는 7일 성명을 내고 “해당 페이지는 ‘음란물 선전’이 아닌 성산업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장”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오랜 기간 성매매여성들은 ‘해어화’, ‘창녀’, ‘갈보’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스스로 말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 대신 말해줘야 하는 존재, 보여지는 대상으로 규정돼 왔다”며 “하지만 당연하게도 성매매여성도 스스로 사고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페이지는 성판매 여성이 존재 자체가 불온하고 에로틱할 거라는 성적 판타지에 기반해 쇼를 하는 페이지가 아니라 그 상상된 이미지의 실체를 폭로하고 저항하기 위해 개설된 페이지”라고 못박았다.
페이스북의 비공개 전환 조치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성노동자유니온 관계자는 “페이스북은 길거리에서 여성들을 도촬하고 몸매를 품평하는 사진은 유머거리로 멀쩡히 남겨 놓으면서 왜 우리들의 목소리는 음란물로 취급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삭제하지 말라. 안전하고 서로 존중하는 커뮤니티는 일방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주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발언권을 보장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본사는 특정 단어가 반복되는 음란물 사이트를 알고리즘으로 거르거나 사용자의 신고를 받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일부러 차단하는 일은 적다”며 “게시글이 큰 인기를 끌수록 검사의 우선순위로 올라가는데 이번에 이슈가 되면서 검사 순위에 오른 것 같다”고 해명했다. 페이스북 측은 관리자의 재고 요청을 접수해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