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토머스(24·미국)가 10번홀(파5)에서 약 2.5m를 남기고 친 버디 퍼트가 홀 왼쪽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아쉬움에 등을 돌린 순간 갤러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0초 넘게 머물러 있던 볼이 홀 속으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잃을 뻔했다 잡은 버디 덕에 선두를 1타 차로 추격한 토머스는 기세를 몰아 역전 우승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그린에 도달하기에 앞서서는 티샷이 나무를 맞고 페어웨이로 떨어진 터라 10번홀은 이래저래 그에게 ‘기적의 홀’로 남게 됐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년 차 토머스가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토머스는 14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클럽(파71·7,600야드)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8타(최종합계 8언더파 276타)를 기록해 패트릭 리드(미국·6언더파) 등 3명의 공동 2위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이번 시즌 네 번째이자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메이저 트로피로 장식한 그는 189만달러(약 21억6,000만원)의 우승상금을 손에 넣었다. 세계랭킹 14위 토머스는 PGA 투어 시즌 상금과 페덱스컵 랭킹에서 모두 2위로 점프했다. 두 부문의 1위는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다.
토머스는 178㎝, 66㎏의 체구로 평균 308야드를 때려내 ‘호리호리한 장타자’로 이름났다. 지난 1월 소니 오픈에서는 최연소 59타와 72홀 최소타(27언더파 263타)를 작성해 ‘기록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먼저 스타로 떠오른 조던 스피스(24·미국)의 친구로도 잘 알려진 그는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가장 빛나는 수식어를 스스로 획득했다.
이날 선두 케빈 키스너(미국)에 2타 뒤진 공동 4위로 출발한 토머스는 8번홀까지 제자리걸음을 했다. 9번홀(파4)의 10m 넘는 긴 거리 버디 퍼트가 기폭제가 됐다. 이어진 10번홀에서 행운의 ‘정지 후 버디’로 상승세를 탄 토머스는 13번홀(파3)에서 그린 주변 칩샷 버디를 터뜨려 단독 선두로 치고 나왔다. 경쟁자들이 타수를 잃어 2타 차 선두가 된 토머스는 ‘그린 마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시무시한 16~18번홀을 남겨뒀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6번홀(파4)에서 까다로운 파 퍼트를 성공시킨 그는 3면이 물로 둘러싸인 17번홀(파3)에서 5m가량의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궈 3타 차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티샷을 벙커로 보낸 끝에 보기를 적어냈어도 우승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토머스는 골프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미국 프로골프협회 소속 프로골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부모와 함께 PGA 챔피언십 경기장을 찾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2·미국)의 우승 장면을 지켜본 꼬마는 17년 뒤 같은 대회의 주인공이 됐다. 토머스는 “PGA 챔피언십은 내게 특별한 대회이며 가족에게도 영원히 잊지 못할 우승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히고 10번홀 버디에 대해서는 “솔직히 볼이 멈춰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결국 중력이 작용했다”며 기뻐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면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최연소로 이룰 수 있었던 세계 2위 스피스는 1타를 줄여 공동 28위(2오버파)로 마친 뒤 열네 살 때부터 친구로 지낸 토머스를 축하해줬다. 양용은(45)에 이어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 우승에 도전한 세계 3위 마쓰야마는 1타를 잃어 공동 5위(5언더파)에 자리했고 안병훈(26·CJ대한통운)은 공동 28위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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