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벌인 유혈사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관련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 역할을 해온 기업인들의 ‘트럼프 결별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가치를 흔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름휴가 도중 백악관으로 일시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인종주의는 악”이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 논란에까지 발목이 잡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주말 사이 34%까지 떨어지며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제약회사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14일(현지시간) 대통령 직속 제조업위원회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위원회 내에서 유일한 흑인 CEO였던 그는 이날 회사 트위터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은 증오와 편견, 집단적 우월주의의 표현을 단호히 거부해 우리의 근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뒤를 이어 스포츠용품 업체 언더아머의 케빈 프랭크 CEO와 정보기술(IT) 업체 인텔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CEO도 대통령 자문 격인 제조업위원회 사퇴 대열에 가세했다. 크러재니치 CEO는 “우리의 분열된 정치가 유발하는 심각한 피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위원회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재계 인사들이 줄줄이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결별을 선언하면서 기업인들을 등에 업고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해 재선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6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을 당시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와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에서 동반 사퇴한 바 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후폭풍이 확산되자 그동안 인종차별 문제에 뚜렷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종주의는 악”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수습에 나섰다. 이날 오전만 해도 제조업위원회를 탈퇴한 프레이저 CEO에게 “바가지 약값을 낮출 시간이 더 많아졌겠다”며 비아냥대는 트위터를 날리기도 했지만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회동한 후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날 여름휴가 도중 백악관에 복귀한 그는 기자회견에서 큐클럭스클랜(KKK·백인우월주의 단체), 신나치, 백인우월주의자들, 다른 증오단체 등을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소중히 여기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단체”라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편견의 이름으로 폭력을 퍼뜨리는 이들은 미국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지난주 말의 인종적인 폭력에서 범죄를 저지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겠다. 정의가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뒤늦게야 백기를 든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돌아선 민심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11~13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실시해 1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보다 3%포인트 더 떨어진 것으로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에 11일 샬러츠빌 유혈사태와 12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발표에 따른 민심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현재 지지율은 이보다 더 낮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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