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고심을 거듭하며 탄원서를 작성했습니다. 노조가 30년간의 신의성실을 엎고 재판에 회부한 만큼 피고의 대표로서 최소한 의견을 피력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사장의 작심 발언에는 재판부에 대한 호소와 더불어 노조에 대한 섭섭함이 짙게 묻어났다. 지난 1988년 고용부의 지침이 있기 전부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 간 합의를 했고 사측은 이를 토대로 충분한 보상을 지급했지만 이제 와서 신의를 저버렸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다. 2011년 8,400만원이었던 기아차(000270) 직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9,600만원까지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산량 증가와 맞물려 충분한 보상을 지급했다는 게 사측의 입장. 실제로 많은 전문가는 기아차의 고임금 구조가 최근 2~3년 새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신의칙을 저버리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 시켜 못 받은 임금을 다시 계산해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맞느냐는 게 박 사장의 주장인 셈이다. 그는 “올해 상반기 중국 시장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소매판매 기준으로 8~9%가량 빠졌다”면서 “(사드 여파 등 대외 변수로) 올해가 유독 어렵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판매량이 줄었고 2년 연속 차가 덜 팔리는 것 자체가 위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당연히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에 따를 것”이라면서도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작심한 듯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면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는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잔업과 주말 특근을 통해 생산했고 생산직 근로자들 역시 통상 시급의 150%의 수당을 받아왔다. 하지만 앞으로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잔업과 특근을 줄이면 생산량 자체가 줄 텐데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지가 핵심”이라며 “이 부분 역시 노조 협조가 잘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들도 노조로 쏠려 있는 힘의 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각국 완성차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파업을 하는 국가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파업에 나서는 노조에 대해 사측의 대항권이 없어 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절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사측의 목소리가 적게 반영되는 현재의 노사정 위원회 대신 중립적인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별도의 협의 기구를 설치해 과거 30년간 이어져 온 기형적 노사 시스템을 미래 지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규제가 너무 강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동차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치 소비국의 입장에서 강도 높은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인 배출가스 규제가 대표적이다. 황은영 르노삼성자동차 본부장은 “르노삼성은 글로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대표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개발한 거점이지만 현실적으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황 본부장은 “투자 결정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인데 노사 문제와 더불어 환경 규제 등에 있어서의 불확실성 때문에 개발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이슈도 국내 자동차업계에는 부담이다. 정진행 현대차(005380) 사장은 “그룹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서두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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