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미역 섬 청등도의 푸른 밥상’ 편이 전파를 탄다.
전남 진도항에서 뱃길로 30km를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섬, 청등도. 바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또 모습을 드러내는 신기루 같은 섬.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청정지역 중 하나인 청등도는 요즘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맞았다. 바로 자연산 돌미역을 수확하기 때문이다. 파도에 부대끼며 자라난 미역이 치러낸 고투를 이제 사람이 감당할 차례이다.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늘 풍성하게 내어주는 넉넉한 바다. 그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차려낸 푸른 밥상을 만나보자.
▲ 청등도 미역 베는 날, 이상엽 어머니의 눈물 젖은 미역 밥상
청등도 사람들이 미역을 베러 가는 날. 집마다 모두 모여 떼배에 올라탄 사람들이 주변 바위섬으로 향한다. 거친 파도에 몸을 적시고 또 적시며 미역을 베어낸다. 청등도 사람들은 미역 베는 이 한 달을 위해 1년 동안 온 정성을 쏟는다. 겨울에는 바위에 미역이 잘 붙으라고 하는 개닦이 작업을 하고, 미역 수확 전에는 미역을 마르게 하지 않기 위해 물을 주는 등 정성스럽게 미역을 키워낸다. 청등도에서 생산되는 미역은 비싼 대접 받는 미역 중 하나인 ‘진도 곽’ 이라 불리는 돌미역이다. 잎이 가늘고 야무지며 지네의 발처럼 생긴 이 미역은 일반 양식미역과 생김새부터 다르다. 많이 끓일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는 청등도의 미역. 혈당조절과 콜레스테롤 제거, 고혈압 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한번 맛본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도 청등도 미역만을 고집한다고 한다.
진도에서 청등도로 시집오신 이상엽 어머니, 자식들을 육지로 보내고 부부는 미역을 베서 돈을 벌기 위해 섬에 남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리다. 억척같이 살았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떠날 수 없는 섬이 되어버린 청등도. 청등도 미역을 넣고 이틀 이상 끓여낸 미역국과 날이 더운 여름날 먹기 좋은 미역 냉국, 그리고 청등도 바다에서 잡은 갑오징어도 상에 올랐다. 거친 바다에 적응하며 살아온 세월이 낳은 어머니의 밥상을 만나보자.
▲ 바다에 장 보러 가는 날, 늘 풍족하게 내어주는 바다.
바다의 날씨가 심상치 않은 날. 이런 날, 미역 베는 일도 잠시 손을 놓는다. 어촌계장 김형식 씨와 마을 아낙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장을 보러 가기 위해서인데, 섬사람들의 장터는 섬 바로 앞, 드넓게 펼쳐진 바다이다. 찰진 미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먹을거리를 키워내는 갯바위는 기름진 땅과 같다. 언제든 싱싱한 따개비와 거북손, 군소를 얻을 수 있는 풍족한 바다. 그 넉넉한 바다 덕분에 청등도 사람들은 고된 섬 생활이지만 배곯는 일은 없었다. 여름 농어는 기름기가 많아서 다른 계절보다 고소한 맛이 월등한데 특히 조류가 센 곳에서 잡히는 청등도 농어는 더욱 육질이 단단하고 찰지다. 실하게 살이 오른 농어 살을 발라 청등도 미역과 푹 고아낸 농어미역국, 따개비 삶은 물에 된장을 풀어 끓여낸 따개비 된장국, 거북손 초무침과 군부 무침까지. 한여름의 뜨거운 바다와 맹렬한 파도가 만들어낸 청등도의 밥상을 마주한다.
▲ 김형식·강정숙 부부, 거친 파도를 이겨내는 삶
마을 공동 미역 채취가 없는 날에는, 집집마다 개인 미역 작업을 한다. 수심이 깊고 조류가 센 곳에는 그만큼 최상의 품질의 돌미역이 있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겨우 두 발 디딜 수 있는 정도의 좁은 바위에 위태롭게 떼마 배를 묶은 김형식·강정숙 부부. 아내는 배를 지키고 남편은 파도에 맞서 미역을 벤다. 청등도에서 자고 나란 어촌계장 김형식 씨도 이러한 파도 앞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가슴을 졸인다.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온몸으로 바다와 맞서는 남편을 보니, 아내 강정숙씨의 마음은 뭉클해진다. 파도가 밀려올 때 기다렸다가 돌아나가는 때에 맞춰 낫질을 시작한다. 파도와의 사투는 금세 체력을 바닥나게 한다. 이런 날이면 호락호락 하지 않은 바다가 원망스럽기도 하다는 김형식 씨. 하지만 부부는 이 섬에 미역이 자라는 한, 다시 바다로 나갈 것이다. 청등도 사람들에게 바다가 미역은 바다가 준 고마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 청등도의 미역 수확 철은 아껴둔 어머니의 음식 창고를 여는 시간
청등도의 미역은 돈만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다. 뭍으로 나간 섬의 자식들까지 여름 한 철 섬으로 돌아오게 한다는데, 그래서 청등도 미역 철은 가족들이 모이는 계절이라고 한다. 청등도 정판순 씨 딸 부부가 목포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온 자식들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한다. 뭍에 발 한번 붙이기 쉽지 않은 외딴섬에 살기 때문에 식재료를 직접 자급자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육류가 흔치 않다 보니 각 집마다 닭을 서너 마리씩 키우고 있다. 백년손님 사위를 위해 토종 닭개장을 준비하는 정판순 어머니. 섬에서 기른 토종닭에 직접 채취한 고사리, 농사지은 들깨를 갈아 넣고 고춧가루로 색을 내면 청등도 정판순 어머니 표 닭개장, 완성이다. 그리고 당일 남편 김인석 씨가 놓아둔 통발로 잡은 장어와 우럭까지 한상에 올렸다. 이렇게 청등도의 미역 철은 어머니의 아껴두었던 음식 창고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며, 찬장 높은 칸에 잘 닦아두었던 수저들을 꺼내놓는 철이다. 밥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웃음소리에 행복한 한때가 흘러간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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