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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와치]가상화폐, 패러다임 변화인가 신드롬일 뿐인가

"기존 화폐체제 넘어 세상을 바꿀 기술" vs "가상화폐 멀리하라…목적도 가치도 없다"





지난 2009년 온라인상에 나카모토 사토시가 쓴 논문이 한 편 올라왔다. 논문 제목은 ‘비트코인, 개인 간 전자적 화폐 시스템’이었다. 비트코인 운영을 위한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설명이었다. 참조문헌 1쪽을 제외하면 총 8쪽에 불과한 이 짧은 논문이 현재 전 세계에서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시작이었다.

논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 간 전자적 화폐 시스템은 곧 블록체인을 의미한다. 이 같은 블록체인에서 구동하는 화폐가 비트코인이다.

반향은 소리 없이 이어졌다. 그해 10월 처음으로 달러와 비트코인 간 환율이라는 것이 형성됐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1,309.03비트코인이었다. 지금은 물론 1비트코인이 5,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달러 가치와 비트코인의 가치가 역전됐다.

2010년 2월에는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탄생하더니 급기야 2010년 5월22일 비트코인으로 실물상품을 구매하는 첫 거래가 이뤄졌다. 미국의 한 남자가 온라인에 1만비트코인에 피자를 팔 사람이 있느냐는 글을 올렸고 4일이 지나서야 한 지역 파파존스 피자 가게에서 피자 2판을 보냈다. 지금으로 치면 500억원으로 피자 2판을 먹은 셈이다. 비트코인 신봉자들은 이날을 한낱 온라인상 숫자에 불과하던 가상화폐가 현실에 녹아든 역사적인 날로 기억하면서 현재도 매년 5월22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이후 비트코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가상화폐 탄생은

2009년 8쪽 논문으로 시작…1년후 거래 시장 열려

3년 만에 시총 10억弗로…현재는 720억弗 달해

작업증명·P2P 도입, 거래 기록 담는 블록체인 형성

슈퍼컴퓨터 57만대 동시에 동원해야 위·변조 가능

100년간 2,100만개…발행량 제한, 인플레 방지도



2010년 10월에는 자금세탁국제기구(FATF)가 비트코인이 테러 자금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고 이후 국제기구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표한 것이 전해지면서 한 달 후 곧장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10억달러를 돌파하는 데는 2년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2013년 3월28일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1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적 핫이슈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비트코인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이즈음이다. 이후 가격 하락으로 잦아들었던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올 들어 다시 가격이 급등하며 치솟았다. 현재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80조원(720억달러)이다. 국내 상장사를 통틀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기업은 삼성전자 단 한 곳이다. 현대자동차나 네이버 모두 시가총액 면에서 비트코인의 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Cryptocurrency)라는 개념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온라인상의 화폐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의 도토리 등 디지털 화폐가 소비자들에게 활발히 쓰였다. 도토리는 싸이월드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기술적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시장에서 각광 받게 된 근거는 이같이 기존 디지털 화폐가 가진 기술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점이다.

싸이월드 도토리의 경우 싸이월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만 발행, 관리할 수 있다. 게다가 싸이월드 서버가 해킹되면 발행량이 수없이 달라진다든지, 이용자 개개인이 가진 도토리 개수가 변경된다든지 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서버만 해킹하면 내가 가진 돈을 무한대로 만드는 일도 이론상 가능하다.

비트코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시, 작업증명(POW), 개인간공유(P2P)로 불리는 몇 가지 기술을 도입했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상에서는 거래기록을 담은 하나의 블록이 다음 블록과 수학적 계산으로 맞물려 있다. 여기다 블록 하나가 탄생할 때마다 이 블록은 블록체인에 참여한 모든 참가자에게 동시에 전파된다.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모양의 블록체인을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해커 입장에서는 블록체인상 블록 하나를 가짜로 만든다고 해도 기존 블록체인과의 연결을 고려해야 하며 또 참여자 전원이 똑같이 가졌기 때문에 한번에 참여자 전원을 해킹해야 해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하다. 물론 전체 네트워크를 뛰어넘는 성능의 컴퓨터를 동원한다면 해킹도 가능하다. 다만 피넥터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8월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투입된 컴퓨팅파워는 약 1,958만페타플롭스로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인 중국 톈허 2호 계산력(33.8페타플롭스)의 약 57만배다. 해커가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57만대를 동시에 동원할 재력이 있다면 위변조가 가능한 셈이다.

더욱 치밀한 점은 나카모토가 애초부터 비트코인이 실제 세계의 법정화폐처럼 쓸 수 있도록 발행량을 고정해놓았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100년 동안 총 2,100만개만 발행된다. 화폐가 무제한 발행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가치가 사라지고 그럴 경우 효용이 사라져 기술상 가치마저 없어지는 점을 미리 고려한 계산이다. 특히 블록체인망 활성화를 위해 초기에 더 많은 비트코인이 생성되도록 하고 이후 발행량이 적어지도록 돼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을 네덜란드 튤립 사기로 치부하기에는 비트코인은 너무나 정교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당시 시가총액이 10억 달러를 넘었을 때도, 720억달러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최초 비트코인 논문을 올린 나카모토의 정체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호주의 컴퓨터 개발자 등이 나카모토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나카모토가 ‘그’가 아닌 일부 개발자집단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나카모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물론 많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운영상 변경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누가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른바 ‘거버넌스’ 문제다.

최근 비트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떠들썩했던 비트코인 분리 문제 ‘세그윗’ 이슈도 결국은 이 같은 거버넌스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기 때문이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쓰이는 한 블록의 크기는 약 1MB. 이 블록에 7개의 비트코인 거래기록을 담을 수 있지만 문제는 비트코인의 부상으로 이미 세계에서 발생하는 거래량이 현재 블록의 크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결국 거래하더라도 실제 체결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이는 블록체인 거래에 큰 취약점이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개발자 세력과 채굴자 세력이 서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맞닿아 있는 것이 세그윗 이슈다. 현재는 우선 8월 1일부터 블록에 들어가는 정보를 압축하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봉합했다. 블록 크기를 늘리는 것은 오는 11월 이후 결론이 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 채굴세력인 비트메인의 우지한 대표 측은 자체 코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것이 비트코인캐시(BCC)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상화폐를 발행한 박창기 보스코인 의장의 경우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문제를 파고들었다. 합의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보스코인’이라는 새로운 가상화폐를 선보여 150억원 대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한계는 거버넌스뿐이 아니다. 비트코인 이후 쏟아지는 가상화폐는 대부분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며 나온 동전들이다. 이더리움의 경우 블록체인망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세우겠다는 비전을 가진 가상화폐다. 2014년 발행 이후 현재 시가총액 2위의 유력한 가상화폐로 떠올랐다.



가상화폐 미래 논쟁

“블록체인, 수렵 → 농경 전환에 필적하는 영향력”

빌게이츠도 “편리성·비용 측면 법정화폐보다 낫다”

美 칼럼니스트 브렛 애런스 “완전히 쓰레기” 비판

“다단계 사용 화폐와 비트코인 차이 뭐냐” 지적 속

“분명한 것은 가상화폐, 멈출 수 없다” 한 목소리



비트코인 발행 이후 지금까지 쏟아진 화폐는 총 1,060여개에 이른다. 가상화폐 발행이 쏟아지고 주요 코인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둘러싼 세계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조니 뎁 주연의 영화 ‘킹 오브 더 정글’의 실제 모델이자 보안 분야 대가인 존 맥아피 MGT캐피털 대표는 최근 미국의 한 매체와 인터뷰하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대해 “블록체인 기술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한 것에 필적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의 인류사적 의미에 대한 후한 평가를 넘어 “가상화폐 가치 상승에 따라 기존 법정화폐의 가치는 결국 ‘0’이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부상에 따른 기존 화폐체제의 붕괴를 예고한 셈이다.

다만 맥아피 대표가 가상화폐에 대해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것만큼이나 부정적 분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미국 칼럼니스트 브렛 애런스는 지난달 기명 칼럼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멀리하라”며 “이들은 완전히 쓰레기(garbage)”라는 직설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 목적도,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한 주제를 두고 이토록 첨예한 평가가 나오는 이슈도 드물다.

빌 게이츠는 2014년 한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편리성과 비용 측면에서 법정화폐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가 “2009년에는 세상을 바꿀 기술이 두 개 탄생했다. 하나는 스마트폰이고 하나는 블록체인”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스마트폰 발명과 같은 위치에 올렸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과연 가상화폐의 실체와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기술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가상화폐에 근본가치가 있느냐” “결국 뭘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부장검사인 이종근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최근 가상화폐 토론회에서 “불가리아나 홍콩에서 만든 (실체 없는) 가상화폐가 후순위투자를 기반으로 값이 올라가는 다단계 사기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다만 이같이 다단계 범행에 쓰이는 가상화폐와 비트코인에 본질적 차이가 있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가상화폐를 매개로 한 사기사건이 국내서도 종종 일어난다.

일부에서는 그렇다면 법정화폐나 금의 본질가치는 무엇인지 거꾸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법정화폐는 정부가 신뢰를 보증하지만 이를 100% 믿을 수 없어 안전자산인 금과 연계하기도 하고 심지어 금 역시 그 자체로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천년간 금에는 가치가 있다는 신뢰가 있어왔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논쟁이 이어지는 와중에 입장이 바뀌는 사례도 있다. 미국 댈러스 매버릭스 농구단의 대주주이자 투자자인 마크 쿠반은 6월까지만 해도 “금은 액세서리라도 만들 수 있지만 가상화폐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가상화폐는 금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는 견해를 보였지만 최근 트위터에 “결국 비트코인을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남겼다.

가상화폐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다. 다만 게이츠는 최근 이 같은 자신의 견해를 새로 밝혔다. “비트코인은 이제 멈출 수 없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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