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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보다 세금 누수 먼저 막는 게 순서죠”

조세 전문가 고성춘 변호사가 말하는 ‘올바른 세정’

과세는 법률과 형평성에 따라 억울함 없도록 해야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금은 필수적이다.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지는 이유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금을 ‘기꺼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낸다. 그러기에 세금이 늘어나면 얼굴부터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최상위권 대기업과 초고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거둬들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지만, ‘증세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내 최고의 조세 전문 변호사로 꼽히는 고성춘 변호사를 만나 증세 논란을 비롯한 세금 이야기를 나눴다.


고성춘 변호사가 자신의 저서들이 전시된 진열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난 8월초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의 골자는 법인세 과표구간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는 한편, 소득세 과표 구간 3억~5억원 소득자 및 5억원 초과 소득자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각각 40%와 42%로 현행 세율보다 2%씩 높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벌과 부자를 대상으로 한 ‘핀셋 증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은 조세의 대원칙을 담고 있다. 소득이 많으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도 일반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세금을 너무 많이 부과하면 경제활동의 의욕을 꺾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국가든 조세 정책을 세심하고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까닭이다.

고 변호사는 증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국가적 필요에 따라 정치 적·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증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인기영합주의로 조세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증세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절세와 탈세를 넘나들면서 세액공제를 많이 받아 실효세율이 낮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증세라도 해야 실효세율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세법은 조세평등주의와 조세법률주의가 대전제입니다. 형평성이 있어야 하고, 법률에 따라야 합니다. 한마디로 세금은 공정해야 하는 겁니다. 진보정권은 부자 증세를 하고 보수정권은 근로자 증세를 하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닐 겁니다.”

고 변호사는 “증세는 반드시 저항을 부르기 때문에 마지막 보충적 방법으로 써야 한다”며 “정부는 그 전에 세금 누수부터 막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강조했다. 손쉬운 증세 정책을 선택하기 전에 세금을 정확하게 빠짐없이 걷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례로 조세특례제한법의 조세 감면 규정 등을 악용해 세금을 탈루하는 것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법 개정안 중에서도 법인세 인상이 상당한 논란을 부르고 있다. 특히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법인세 인상은 기업들의 투자 위축을 불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 활동을 촉진하는 추세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고 변호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성급한 증세에는 비판적이지만, 법인세 인상이 기업 활동을 위축 시킬 것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기업이나 투자 자는 이윤을 보고 투자하는 겁니다. 증세와 상관없이 이윤 창출 기회가 있으면 투자하게 돼 있어요. 증세가 투자를 막는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또 세율보다는 실제 세(稅)부담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세금 감면이나 공제를 많이 해주고 있어요. 이 때문에 실제 부담하는 세율, 즉 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낮습니다.”


고성춘 변호사는 “세정은 법리에 따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고성춘 변호사는 여느 변호사와는 꽤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법조인 인생의 초반부를 공직사회에서 보냈다. 그가 사법연수원 수료 후에 첫 번째 선택한 직장은 감사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감사원의 변호사 특채 공고를 보고 지원해 공직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사업연수원 시절부터 향후 진로로 행정부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개별적인 사건에 매달려야 하는 법조계보다는 좀 더 크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행정부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을 듯해서”였다.

그는 감사원 2국 1과에서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금융과 관련된 주요 기관에 대한 감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감사원에 근무하던 시기는 1999~2000년으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얼마 후였다.

당시 그는 공적자금 집행과 관련된 한 기관에 대한 감사 업무 도중에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두고 그는 해당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1주일이나 논쟁을 벌이다가 상부의 지시로 그냥 복귀해야만 했다. 사명감과 열정으로는 넘기 힘든 벽을 느꼈을까. 그는 그날로 사표를 제출했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그는 과거 10년간 사법시험 공부와 씨름할 때 얻은 교훈과 인생의 지혜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를 집필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국세청의 개방직 공무원 공모 소식을 접하게 된 그는 다시 한번 공직에 도전해‘국세청 1호 개방직 공무원’타이틀을 얻게 된다.

당시 고 변호사가 임용된 직책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이었다. 세무 공무원들이 일선 세무서장을 역임하고 난 후 국장직으로 올라갈 때 거치는 요직 중 하나였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조세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발판이 됐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게 존재의 이유다. 세무 공무원들도 자신들의 과세처분이 옳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납세자가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실제 항의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 터에 고 변호사는 납세자의 편에 섰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로지 세법의 규정과 법리에 따른 것이었다.

“국세청에 근무하면서 보니까 세무 공무원들이 세법을 등한시하는 겁니다. 법률과 규정보다는 관행으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부실과세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항상 국가권력은 도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무 공무원이 납세자들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상부에 부실과세를 해서는 안 된다, 과세행정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건의를 강하게 했죠. 저는 과세처분이 잘못됐으면 이의신청 단계에서 납세자를 구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으로 근무할 때 이의신청 인용률이 40%에 달했습니다. 저는 사건 당사자 이름도 안 보고, 세액 규모도 안 보고, 사건 내용만 법리적으로 들여다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규제’당국에서‘구제’활동을 했던 셈입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는‘억울한 납세자는 결코 없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세행정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나아가 국세청을 떠나서도<국세기본법 사례 연구>,<상속세 및 증여세법 사례 연구>,<조세법>등 조세 관련 저서를 꾸준하게 펴내며 세정(稅政)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으로 재직한 5년 동안 다룬 사건만 해도 수만 건에 달한다. 그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최고의 조세 전문 변호사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그가 말한다.“세정은 법리대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법리의 수로(水路)가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 고성춘 변호사의 기업 세무전략 가이드

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세무조사다. 무서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무당국은 기업들에게 ‘알아서’ 신고를 잘하라고 한다. 그런데 세법이 어렵다. 만약 세무신고에 실수가 있으면 예기치 못한 가산세 제재를 받게 된다. 이른바 관행에 따라 불성실신고를 했다가 들켜도 제재를 받는다. 고의적인 세금 탈루를 했다가 적발되면 형사고발 조치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어한다. 그런 경우에는 조세특례제한법의 감면이나 공제 규정 요건에 맞추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런 것들이 모두 절세 방법이라는 게 고성춘 변호사의 조언이다. 꼼수를 부리는 것은 뒤탈을 부를 수 있다. 고 변호사는 “세법 규정은 납세자가 꼼수를 쓴다고 가정하고 만들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칭 세무 전문가’들도 조심해야 한다.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장담하는 전문가들의 잘못된 코치를 받았다가 가산세 폭탄을 맞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로 소송이 벌어졌을 때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경계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툼이 있다는 것은 과세관청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납세자의 입장이 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 변호사는 말한다. “돈 버는 데는 귀신 같은 사업가들이 세금 문제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똑똑한 사업가라면 항상 세금 문제를 염두에 두고 사업 활동을 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참모로 선임해 세무 전략을 맡기는 것도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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