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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성분명 처방' 도입 논란 재점화…어떻게 보십니까

의사-약사 해묵은 밥그릇싸움 "의료서비스 발전은 외면"





약사계와 의료계가 ‘성분명 처방’ 도입을 놓고 또다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 조제 등의 입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약사의 권리를 회복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의약분업의 본질을 훼손하고 국민 건강권을 위협한다며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타협을 통한 절충점 찾기보다는 기득권 지키기에만 매몰돼 의료서비스의 발전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약사회는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세계약사연맹(FIP) 서울총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잇따라 성분명 처방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약사회는 “이미 27개국에서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며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17년이 넘은 한국도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 확대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성분명 처방을 도입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贊-약사계

“국민 선택권 확대…세계적 흐름

불법 리베이트 근절에도 효과”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즉각 성명을 내고 한동안 잠잠했던 성분명 처방 도입을 약사계가 국제학술대회 자리를 빌려 전략적으로 공론화했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 도입은 앞서 의료계와 약사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합의한 의약분업의 정신을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자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는 이기적인 발상”이라며 “약사계는 소모적인 논란만 키울 것이 아니라 본연의 업무인 의약품 조제와 복용법 지도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분명 처방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시행에 따라 도입된 제품명 처방을 대체하는 제도다. 현행 제품명 처방에서는 의사가 환자가 복용해야 하는 약을 정해주면 약사는 원칙적으로 해당 약만 조제할 수 있다. 해당 약이 없을 경우 대체 조제라는 제도에 따라 약사가 복제약을 조제할 수 있지만 사전 또는 사후에 의사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탓에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국내 대체 조제율은 선진국보다 한참 낮은 0.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외국의 성분명 처방 제도 도입 현황을 보면 미국·일본·프랑스는 부분적으로 도입해 시행 중이고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전면 의무화됐다. 반면 영국과 독일 등은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성분명 처방이 논란이 되는 것은 제도 도입에 따라 의약품 조제와 처방에 대한 의사와 약사의 권한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의사의 권한이 줄고 약사의 권한이 늘 수밖에 없어 성분명 처방은 최근까지도 양측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 건강권 확대를 위한 의료서비스 산업 발전 측면은 도외시한 채 기존의 틀에 갇힌 지루한 공방만 펼치고 있는 셈이다.

약사계는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국민이 원하는 약을 선택할 수 있고 약값이 저렴한 복제약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어떤 제품인지 알지 못해 예기치 않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약사계는 현행 40% 수준인 국내 복제약 처방률이 높아지면 서민의 약값 부담이 줄고 건강보험 재정도 안정화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고 저가 복제약 범람으로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는다며 맞서고 있다.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근절 효과도 논란거리다. 약사계는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일선 의사의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제품명 처방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정부의 감독 소홀과 제약사의 무리한 마케팅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反-의료계

“의사가 환자 복용 약 알 수 없어

국민 건강권 해치는 이기적 발상”



매년 국가적 낭비로 지적되는 의약품 재고를 해결하는 데 성분명 처방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약사계는 연간 2,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일선 약국의 재고 의약품 폐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나 의료계는 오히려 시장에서 외면받은 재고 의약품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과거 의약분업 당시 막말과 명예훼손 등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던 양측의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은 현재 운영 중인 제품명 처방보다 성분명 처방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53.6%가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상품명 처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비율은 19%에 그쳤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 도입에 따른 의료계와 약사계의 갈등에 정작 환자와 국민의 건강권은 배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장치나 보완책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분명 처방 도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약 업계 역시 의료계와 약사계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상황이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공동대표는 “성분명 처방 도입으로 현행 제품명 처방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국민 편의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다만 제도 변경으로 불법 리베이트 등 약사가 의사보다 윤리적으로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복제약의 효능을 신뢰할 수 있느냐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 도입에 따른 장단점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서둘러 제도를 도입하기는 힘들다”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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