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수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소는 정부서울청사 자신의 집무실 옆에 마련된 회의실. 가계부채 종합대책과 대외건전성 점검결과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14일 이례적으로 부총리 집무실에 경제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한꺼번에 모이고 드물게 한국은행 총재도 부총리 집무실을 찾았다.
경제팀을 ‘홈’으로 불러들인 김 부총리는 “새 정부에선 주제별 경제현안 간담회라는 플랫폼을 통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겠다”며 힘찬 어조로 회의를 시작했다.
새 정부 들어 김 부총리는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중책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약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새 정부 출범에 이바지한 공로도 없는데다 이전 정권에서 장관(국무조정실장)까지 지낸 경력이 목소리에 힘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여당, 일자리위원회, 총리실 등 ‘시어머니’들 눈치 보느라 바쁘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지난 대통령 업무보고 때는 회의 중반 접어들 무렵,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발언 도중 갑자기 “보고할 것이 너무 많다”는 말을 내뱉었다. 기재부가 업무보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여러 수석실로부터 중복 지시를 받은 것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것이다. 특히 소득세 인상이 여당과 청와대 중심으로 이뤄지고 김 부총리가 배제된 듯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러나 김동연 부총리의 행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날 열린 경제현안간담회는 경제팀의 수장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주는 모습이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실세로 불리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 등이 모인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이전 정부의)서별관 회의를 대신하는 간담회”로 “필요한 주제를 논의하되 회의 개최(여부)와 참석자, 안건은 사전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며 경제수장으로서 앞으로 회의 방향을 제시했다. 김 부총리는 특히 주제에 따라 참석자를 가려 경제현안 간담회를 이끌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변화된 부총리의 모습은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부총리는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 (경제팀은) 내각이 중심이 돼서 가는 게 맞다. 믿고 맡겨주면 좋겠다”며 소신 발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 부총리는 이때부터 더 과감해졌다. 자신감에 찬 듯 김 부총리는 최근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장악력을 점점 높여갔다.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경제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예고한 셈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 12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보유세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권 수뇌부에서 보유세 인상 카드를 거론했지만 김 부총리는 단호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혁신성장과 함께 가야 지속가능하다”며 소신 발언을 했다. 이처럼 김 부총리가 목소리에 힘을 내고 경제수장의 역할을 하는 데는 문재인 대통령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더 소신 있게 발언을 하시는 것 같다”며 “이날 경제현안간담회에서도 청와대 측과 가감 없이 의견을 주고받았고 회의를 주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 부총리는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추석 연휴 이후 발표할 가계부채 종합대책 방향에 대해서도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가계부채 급증이 지속되면 성장 등 거시경제정책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취약 차주에 대한 맞춤형 지원과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10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대외건전성 점검결과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의 견조한 펀더멘털(기초체력) 등을 감안할 때 외국인 투자금의 급격한 대규모 유출 등 유동성 악화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리스크의 부정적 영향 최소화를 위해 정부와 한은 등 관계기관 간 공조 체계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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