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Activision Blizzard 는 콜 오브 듀티 Call of Duty , 워크래프트 Warcraft 같은베스트 셀러 게임으로 비디오게임 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이제는 게임 대회 시장에서 제2의 ESPN이 되려고 한다. 과연 관중들도 이에 호응할까?
2016년 회사 프로파일 : 액티비전 블리자드
매출 66억 달러
이익 6억 6,600만 달러
직원 9,500명
연평균 주주 총수익률(2011~2016) 16.3%
마름모꼴의 아기 용이 물방울 무늬 알에서 깨어난다. 아기 용은 반점이 찍힌 알 껍질 조각을 벗어 던지고, 둥지에서 아장아장 기어 나와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사방을 기어 다닌다. 작고 귀여운 보라색 날개로 파닥거리기도 한다. 몇 초 후, 3인조 외계인 악당들이 등장 해 신화에 나올법한 아기용을 괴롭힌다. 악당들이 아기용을 둘러싼다. 손가락 3개가 달린 악당 무리 지도자가 “나는 아기 용이 너무 좋아. 굽기는 미디엄 레어로”라고 위협을 가한다.
작은 아기 용이 불쑥 악당들에게 달려들어 강력한 불꽃으로 적들을 무력화 시킨다. 아기 용은 기뻐하며 “와, 스파이로 Spyro *역주: 보라색의 용감하고 영리한 작은 드래곤 가 이겼어!”라고 외친다. 아기용은 쓰러진 악당 한 마리 위로 올라가 발톱 달린 통통한 다리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난데없이 바이킹 모자를 쓴 키 큰 마법사가 나타나더니 아기 용에게 반쯤 먹다 만 핫도그를 건넨다. 마법사는 “거의 안 먹은 거야”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쯤에서 멍해졌다(이 기사를 쓰면서 수 차례 겪은 느낌이다). 필자가 몇 살만 더 젊었거나 게임을 했더라면, 컴퓨터 화면에 등장한 생명체들이 바로 게임 스카이랜더스 Skylanders 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스카이랜더스는 토이투라이프 toys- to-life *역주: 가상현실과 실물을 결합한 게임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다양화를 시도한 게임 시리즈다. 비디오게임 거물인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제작했으며, 그 가치가 35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이 회사는 게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품들을 출시해왔다. 대표작으론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싸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 심심풀이용 스마트폰 게임인 캔디 크러시 사가 Candy Crush Saga 등이 있다. 스카이랜더스 프랜차이즈는 2011년 출범해 지난 6년 동안 3억 개에 달하는 액션 피겨 action figure *역주: 관절이 있어 포즈를 자유롭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모형 와 기타 장난감을 판매해왔다.
필자가 실제로 게임을 하는 유저였다면, 그 장면을 황당하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소 놀랄만한 부분이 있다면, 이 장면이 실제 게임에는 나오지 않는 다는 점이다. 사실 필자가 본 건 2분짜리 스카이랜더스 아카데미 시즌 1의 오프닝 영상이었다. 스카이랜더스 아카데미는 올해 10월 넷플릭스에서 최초 공개 될 TV 밖 번외편이다. 이 번외편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사업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는 걸 시사하고 있다. 게임업계 골리앗인 이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다양한 사업 모델을 갖춘 거대 세력이 되기 위해 매우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내놓은 게임만 놓고 봤을 때, 이 회사의 성장세는 최고 우등생 리스트에 오를 만한 수준이다. 지난 회계연도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매출은 전년 대비 42% 상승한 6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가도 지난 5년간 400% 이상 상승했다. 이 같은 실적의 배경에는 CEO 보비 코틱 Bobby Kotick 이 있었다. 그는 상장된 테크 기업 중 최장수 CEO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코틱은 지난해 미국 10대 고위 연봉 CEO 중 한 명이었다. 그 의 총 보수는 3,310만 달러다. 그 중 2,500만 달러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코틱은 IT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중 한 명인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 와 교제를 하고 있다).
올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37년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포춘 500대 기업에 선정됐다. 게임업계에선 매우 드문 현상이다. 과거에도 비디오 게임 기업 일렉트로닉 아트 Electronic Arts 와 업계 선구자 아타리 Atari 가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리스트에 살아남지 못했다. 일렉트로닉아트는 2010년 단 한 차례, 아타리는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500대 기업에서 오래 선정되는데 그쳤다(아타리는 기업 소유권이 수 차례 바뀌고 또 한 차례 파산을 겪은 후, 현재 프랑스 미디어 기업으로 편입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게임이 주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될 수는 있지만, 게임 회사들은 히트작에 좌우되기 때문에 그 동안은 비디오게임을 넘어 성공적으로 확장한 사례가 한 번도 없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바로 그 첫 역사를 쓰기를 바라고 있다.
스카이랜더스 아카데미는 용이 중심인 TV 쇼에 그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독점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보유 중인 캐릭터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웅 저격수와 지상으로 떨어진 대천사 티라엘 Tyrael 도 있다(던전 dungeon *역주: 지하감옥을 탐험하는 게임 디아블로 Diablo 의 플레이어들은 티라엘 대천사가 등장할 때 열광한다). 진행 중인 다수의 영화 작품도 있다. 이 작품들은 전쟁 게임 베스트셀러 프랜차이즈인 콜 오브 듀티를 원작으로 한다. 또한 소비자 상품 사업부를 새롭게 조직했다. 이 사업부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적 재산(IP)을 활 용해 만화책부터 의류까지 전체 상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e스포츠 제국을 건설하려는 노력이다. 비디오 게임 대회라는 신흥 시장에 뛰어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게임 대회는 한 때 틈새 시장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 *역주: 서서히 진행 되던 한 현상이 작은 요인으로 인해 한 순간 폭발하는 것 에 다다르고 있다. 전 세계 약 3억 8,500 만 명이 올해 e스포츠 대회를 시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부분은 온라인 시청이지만,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현장 관람추세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게임 전문 시장조사기관 뉴주 Newzoo 에 따르면, e스포츠 매출은 올해 7억 달러, 2019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현재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일부 게임은 e스포츠 리그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조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시장 자체가 아직은 작고 분할된 상태이기 때문에, 블리자드 정도 규모의 회사는 업계를 장악할 수 있다. 작년 블리자드는 메이저 리그 게이밍 Major League Gaming (MLG)을 인수했다. MLG 는 e스포츠 행사 주최 및 배급 기업이다. 코틱은 MLG에 대해 “비디오게임 시장의 ESPN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MLG는 ESPN 급 장악력을 갖기엔 지금도 수 년 정도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코틱의 비유는 자신의 야심을 다 표출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좀 더 정확하게 그의 구상을 표현하려면, ESPN은 미식축구 게임 배급 외에도 NFL 을 소유하고 전 세계 모든 축구공 제작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올해 말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자사의 인기 신작을 기반으로 오버워치 Overwatch 리그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 리그는 기본적으로 참가 팀 전원과 게임 배급 전체를 관장하게 된다. 액티비전은 e스포츠 관중이 증가함에 따라, 리그 협찬과 광고, 티셔츠 제작, 모자 상품 판매 등을 통해 연 매출 수십억 달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예상 매출에 대한 기준점으로 NFL의 기록을 언급한다. NFL은 약 2억 4,000만 명의 관중을 기반으로 미디어 판권 61억 달러를 포함해 1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코틱은 “10년 후 e스포츠 시장 롤모델이 될 게이머들은 전통 스포츠 스타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아직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MLG는 블리자드가 최근 인수한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아직 신규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MLG가 지금 당장 히트를 친다고 해도 매출 규모는 NFL에 비해 아주 사소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 54세인 코틱은 스스로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는 26년 동안 CEO 자리를 지키면서 거의 절망에 가까운 재정적 위기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구해냈다. 시가 총액이 450 억 달러인 이 기업은 현재 전 세계 17개 게임 제작 스튜디오를 운 영하고 있다. 또한 공격적으로 다른 게임 제작사를 인수해 프랜차이즈 게임들을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다.
확장세를 계속 이어나가려면 꾸준한 성장과 지속적인 히트 상품개발이 필요하다. 기업의 지배력 확장을 위한 코틱의 최신 전략은 지적 재산에서 수익을 극대화 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디즈니 스타일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디즈니 전문가들도 동의할 만한 부분이다. 디즈니에서 COO(최고운영책임자)와 CFO(최고재무관리자)를 역임한 코틱의 오랜 친구 톰 스태그스 Tom Staggs 는 “그의 전략은 디즈니가 지난 15년간 취해온 전략과 유사점을 갖고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틱은 자신의 비전 실현을 도와줄 디즈니의 베테랑 여럿을 영입하기도 했다.
물론 코틱의 전략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그 동안 혁신적인 신규 상품에 대한 투자보다 기존 프랜차이즈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존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수익을 뽑아내려 밀어붙이다가 그 수명을 단축시켜 게임 팬들을 대거 놓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다. 아타리 의 공동 창립자 놀런 부슈널 Nolan Bushnell 은 “블록버스 터 히트작에 대한 재정 전략은 진부한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혁신을 하기 보단 영화 록키 247편 처럼 계속 우려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는 궁극적으로 참신함이 생명”이라 고 강조했다.
게임 블로그들을 대충 훑어봐도 코틱에 대한 다채로운 악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유니비전 Univision * 역주: 미국 내 최대 스페인어 방송 기업 이 운영하는 블로그 코타쿠 Kotaku 의 한 블로거는 “코틱과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면서, 그를 “비디오 게임 업계 내 최고 비호감 인물”이라고 칭했다). 그를 향한 적대감의 상당 부분은 코틱이 투자자들에게 밝힌 투자자본수익률(ROI) 중심의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 컨퍼런스에서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면서 재미 요소를 배제하는 일 에 집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이룬 성공 신화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코틱은 대학 중퇴 후인 1980년대 초반 애플 2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불과 19세의 나이에 아크트로닉스 Arktronics 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자금은 그가 텍사스의 한 파티에서 만났던 라스베이거스 출신 부동산 개발업자 스티브 윈 Steve Wynn 으로부터 지원받았다. 이후 아크트로닉스는 폐업을 했다. 하지만 1990년 당시 27세였던 코틱은 윈과 다른 파트너를 설득해 액티비전의 지배지분을 사들이도록 했다. 액티비전은 아타리의 전 프로그래머 4 명이 설립한 게임업체였다. 이 회사는 업계의 선구자였다. 콘솔 console *역주: 각종 전자 기기 스위치가 한데 붙은 조정용 장치 기업이 소유하지 않은 최초의 게임 제작 사였다. 그러나 회사는 특허침해 소송과 관련된 파산 절차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이 틈을 타 코틱과 그의 팀은 50만 달러에 액티비전 지분 25%를 매입했다. 그리 고 1991년 결단력 있는 사업가 코틱이 이 회사 CEO에 올랐다.
코틱은 신속하게 회사를 재정비했다. 게임 생태계 에서 새로운 게임은 대개 스타트업이 개발해낸다. 이를 이해한 코틱은 더 좋은 아이디어와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갖춘 회사를 귀신 같이 찾아냈고, 직원들과 지적재산권 등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액티비전은 주로 인수를 통해 성장했다. 인수 기업 중에는 러벤 소프트웨어 Raven Software 와 스케이트보드 게임 제작사 네버소프트 Neversoft 도 있었다. 2008년 액티비전은 프랑스 미디어그룹 비방디 Vivendi 의 게임 사업부를 합병했다. 블리자드 역시 액티비전과 합병 한 기업 중 하나였다. 블리자드는 품질과 충성도 높은 고객 측면에서 완벽한 명성을 자랑했다. 여러 가지 게임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가 유명했다. 코틱은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탄생한 후에도 CEO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다른 회사들처럼,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라이벌들을 상대하고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를 담당하는 모건 스탠리 Morgan Stanley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노왁 Brian Nowak 은 “넥플릭스, 영화 같은 여러 가지 경쟁 경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하는 ‘캐주얼’ 모바일 게임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픽이 잔뜩 들어 간 정통 비디오게임을 설계하려면, 몇 년 동안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어야 한다. 반면, 모바일 게임은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개발이 가능하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이 같은 위협 요소들을 완화시키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최근 주요 인수 건으론 2016년 캔디크러시 제작사 킹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King Digital Entertainment 인수가 있다). 이 회사는 또한 다수의 게임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덕분에 유저들은 빠르고 값싸게 업데이트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 구매와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다.
물론 역사가 긴 대표 게임들도 있다. 콜 오브 듀티 는 벌써 15주년을 맞았다. 시장 조사 기관 NPD그룹에 따르면, 콜 오브 듀티는 2016년에도 베스트셀러 게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2016년 에디션이 전작들에 비해 판매량이 낮은 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6년 시리즈는 우주가 배경인데, 팬들로부터 지나치게 미래 지향적이라는 야유를 받았다. 올해 콜 오브 듀티(매년 신규 버전이 출시된다)는 2차 세계 대전 배경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코틱은 “콜 오브 듀티의 배경을 우주로 만든 건 너무 과한 설정임을 깨달았어야 했다”고 과오를 인정했다. 이 작은 소동은 게임 시장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방식을 활용한 장수 브랜드 확장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5월 중순 어느 따뜻한 오후, 필자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위치한 블리자드 스튜디오에서 코틱을 만났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대개 그렇듯, 회사 직원 대부분은 젊은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연령대가 낮은 페이스북 본사에 비해 문신과 보라빛 염색을 한 직원들이 훨씬 더 많았다. 화사하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게임 개발자, 게임 디자이너라 던전 같은 느낌의 조명을 좋아하는가 싶었다. 직원 식당 구석에 앉은 코틱이 눈에 띄었다. 그는 카키색 바지에 갈색 로퍼 *역주: 끈 없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굽이 낮은 구두 를 신고, 스웨터 조끼 속에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IT 거물이라기보단 연차를 내고 코딩에 빠진 자녀의 직장 들른 변호사 같았다.
코틱의 목소리는 조용한 저음이어서 그의 말을 듣기 위해선 몸을 기울여야 했다(녹음기로도 거의 잡히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야심만은 우렁찼다. 코틱은 “우리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포부를 늘 품어 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액티비전 블리자드 매출의 대부분은 게임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 코틱이 영입한 인사들의 이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회사를 주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있다. ESPN과 케이블 방송국 NFL 네트워크의 전 CEO인 스티브 본스타인 Steve Bornstein 은 현재 액티비전 블리자드 e스포츠 사업부 회장을 맡고 있다 (전 폭스 스포츠 Fox Sports 부사장 피트 블래스테리카 Peter Vlastelica 가 CEO다). 전 디즈니 임원 팀 킬핀 Tim Kilpin 은 최근 소비자 상품 사업부 책임자로 영입됐다 (또 다른 디즈니 인맥으론 코틱의 여자친구인 디즈니 이사 샌드버그가 있다). 유명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 노 Quentin Tarantino 의 오랜 제작 파트너인 스테이시 셔 Stacey Sher 도 신설된 TV·영화 사업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코틱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영입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라일리 영스 Riley Youngs 라는 젊은 여성이 치킨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필자를 포함 한 수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이 평범한 장면을 지 켜 보고 있다. 영스는 신예 스트리머 streamer *역주: 개인 인터넷방송 진행자 로 온라인 비디오게임을 통해 돈을 번 다. 그녀가 선택한 플랫폼은 트위치 Twitch 다. 트위치 는 아마존 소유의 웹사이트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 고 있다. 이 웹사이트에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게임 플레이를 직접 방송한다.
영스의 온라인 방송을 시청한 팬은 약 15만 명에 달 한다. 그녀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를 중계하면서, 이따금씩 점심 먹는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오늘의 방송 제목은 ‘새로 자른 머리를 봐주세요’다. 그녀는 어깨 밑으로 치렁치렁한 머리, 위는 짙은 갈색, 아래는 거의 금발로 염색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다.
시청자들이 하나 둘 입장한다. 분주함이 느껴지는 웹 페이지 중앙 메인 박스에선 영스의 컴퓨터 게임 화면이 재생되고 있다. 왼편 작은 창에는 모니터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이 웹 캠을 통해 보인다. 오른쪽 창에는 수 천명의 시청자들이 계속 댓글과 질문을 올린다. 그 다음엔 어떤 가상 무기를 선택할 건지, 얼마 주고 새로 머리를 했는지 같은 질문들이 올라온다.
방송은 6시간 이상 진행된다(미시간 출신인 24세 영스는 하루 보통 4-8시간 방송을 한다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필자는 집중력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나름 열심히 중계 영상을 시청했다. 1인칭 시점 멀티플레이어 기반 게임인 오버워치가 어떻게 출시 1년 만에 블리자드 사상 초고속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고, 10억 달러 이상 매출과 3,000만 명의 플레이어를 끌어 모을 수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또 코틱이 왜 이 게임을 통해 e스포츠에 대한 포부를 키우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영스의 캐릭터가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고지대의 사원 사이를 뛰어다니며 빠르게 움직이는 캐릭터를 향해 총을 쏜다. 그녀의 캐릭터에서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건 미래 느낌이 물씬 나는 금제 총부리뿐이다. 영스는 이 총으로 적들을 쏴 죽인다. 왼편 작은 창에선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찡그린 채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현실 속’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문외한에게 위와 같은 장면은 판화 작가 M.C. 에스 허르 Escher *역주: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개념을 토대로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내적 이미지를 표현한 네덜란드의 판화가 작품의 디지털 버전을 관람하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수 백만 플레이어들에겐 트위치 같은 웹사이트가 몇 시간이고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전 세계 유저 수는 월 평균 4억 5,0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해 기준 총 430억 시간 게임을 즐겼다. 같은 기간 해당 게임 시청시간이 역대 최고인 30억 시간에 달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유명 오버워치 스트리머 브랜던 ‘ 시걸 ’ 라니드 Brandon “Seagull” Larned 는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보면 ‘비디오게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사람들이 꽤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게이머에겐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스트리밍이다.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플레이어들은 광고로 수익을 배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프로 대회에 참가해 홍보비와 상금을 챙기는 방법이다.
잘 나가는 소수 스트리머와 e스포츠 플레이어들의 연봉은 100만 달러 이상이다. 물론 대다수에겐 먼 나라 얘기다. 지금까지 라니드는 자신의 소득을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프로게이머로서 버는 수입이 너무 많아 워싱턴주립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중퇴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라니드는 ‘현란한 겐지 플레이 dazzling Genji play ’(무슨 뜻인지 더 이상은 묻지 마시길)로 유명 하다. 올해 24세인 이 청년은 곧 오버워치 리그에 출 전, 더 큰 커리어를 쌓게 될 것이다.
게임 대회 시청자들은 골프 대회 관람객들과 비슷한 느낌을 갖곤 한다. 골프를 치면 골프 대회를 보게 마련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코틱은 e스포츠를 더 흡인력 있는 주류 산업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특정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게임 팀을 조직하고 있다. 프로 e스포츠 사상 첫 시도 다. 그린베이 패커스 Green Bay‘s Packers *역주: 미국 위스 콘신 주 그린베이에 본거지를 둔 NFL 팀 처럼, 오버워치 팀 들은 개별 도시를 연고지로 삼아 출범할 예정이다(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아직 팀의 개수와 지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NFL(미국 프로 미식축구 연맹), NBA(미국 프로 농구 협회), MLB(메이저리그 야구), NHL(프로 아이스하키리그)과는 달리, 오버워치의 역사는 불과 1년에 불과하다. 모건 스탠리의 노왁은 “내가 만약 스폰서라면 LA 킹스 하키팀이 5년 정도 활약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것 같다. 그런데 오버워치도 그렇게 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을 했다. 그럼에도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오버워치가 ’초보(noob, 요즘 게이머들이 쓰는 용어)‘이긴 해도 강점 이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 출시한 게임으로 리그를 운영하면 아무런 핸디캡 없이 출발점에 설 수 있다. 콜 오브 듀티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어느 정도 전통을 가진 게임들은 이미 기존 e스포츠 팀이나 리그에서 플레이 되고 있다.
다른 측면도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수년 간 기존 스포츠 중계권을 묶어온 전통 TV 방송국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전 폭스 부사장이자 현 MLG CEO인 블래 스테리카는 “e스포츠는 1세대 디지털 전용 스포츠”라 고 설명했다. 그는 “TV를 떠난 젊은 층의 마음을 더 떠나게 만드는 유료 TV 시장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방해 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비디오 게임의 ESPN이 되어 e스포츠가 대중에게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틱은 “게임이 관전 스포츠로 진화해 폭넓은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게임의 진화는 현실이 되고 있다. 디즈니 소유의 ESPN은 작년 자사 웹 사이트에 e스포츠 전용 섹션을 만들었다. ESPN 글로벌 사업 콘텐츠 전략 부사장 마리 도너휴 MarieDonoghue 는 시청자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다”면서도 “팬들의 열정과 몰입도가 높고, 선수진과 팀들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잘 알려진 대로 젊은 남성층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고 덧붙였다.
코틱은 오버워치 리그 등을 활용해 수익성 높은 젊은 남성 밖으로도 고객 기반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대다수 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프로 e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러나 영스 같은 플레이어들을 보면, 비디오 게임이 남성 성에만 기초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스포츠 리그들의 경우, 마케팅 과 기타 확장 활동을 펼친 결과 관중의 성비가 대체로 비슷해지고 있다. 예컨대 NFL에선 현재 여성이 팬 층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코틱이 이 같은 이상을 품고 있다는 건 오버워치 리그의 준비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캐릭터의 절반 가량이 여성으로 구성된 첫 초대형 게임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버워치에는 같은 수의 남녀 영웅, 옴닉(omnic, 게임에서 로봇을 지칭하는 용어) 캐릭터 3종, 우연히 고릴라가 된 남성 과학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 속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임원 구성에는 게임 속 성 평등이 반영 되지 않고 있다. 이사진 9명 중 여성은 1명뿐이고, ’회사 고위 경영진‘ 8명은 모두 남성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스테이시 셔(최근 영입한 몇 안 되는 여성 임원 중 한 명)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적 재산을 영화, TV쇼 등 여성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로 각색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셔는 “각본과 영상을 다 룰 때 각별히 신경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 가든 스테이트 Garden State 와 헤이트풀 8 The Hateful Eight 등의 제작 경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LA에 있는 집 한 채를 빌려 ’작가실‘을 꾸렸다. 이 공간에서 창의력 넘치는 엄선된 작가 6명이 한 달 동안 매일 머리를 맞대고 각색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이들은 현재 프로젝트 3개를 잡고, 다양한 단계의 대본제작 과정을 진행 중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각색 버전이다. 콜 오브 듀티는 주로 남성 캐릭터로 이뤄진 전쟁 배경 게임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DNA에 있는 압도적인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코틱의 전략을 보면, 기존의 남성적 코드에서 탈피해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올해 2월 내놓은 최신 연례 보고서에서 ’올해에는 2016년보다 좀 더 가벼운 게임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예컨대 ’완전한 콘솔‘ 구성의 스카이랜더스 게임 신규 출시는 없을 것이다). 연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함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강점이 있는 분야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영역에 투자해야 할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날의 전철을 반복 할 위험이 크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새로운 게임을 많이 출시해도 히트 곡이 하나뿐인 가수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 게임을 넘어 더 많은 수익을 쫓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게임 판매 외에도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게임 프랜차이즈 설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회사의 최신작 오버워치가 이 같은 사업모델이 실현된 사례다.
게임 판매
오버워치는 2016년 5월 출시됐다. 지금까지 3,000만 명이 넘는 게이머들이 온라인 PC 게임과 콘솔 플레이에 총 10억 달러를 지불했다.
e스포츠
오버워치 리그는 올해 출범할 예정이다. 참가 팀들은 생중계로 경쟁을 벌이게 된다. e스포츠 산업은 올해 티켓 판매, 광고, 디지털 및 TV 중계 판권으로 약 7억 달러를 벌어들일 전망이다.
영화·TV 파생작
콜 오브 듀티를 원작으로 한 3편의 영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오버워치도 곧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 워크래프트의 2016년 영화판(라이선스는 블리자드에게 있지만, 제작은 다른 곳이 맡고 있다)은 전 세계적으로 4억 3,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캐릭터 상품 판매
이 회사는 오버워치와 관련된 티셔츠, 만화책, 유니폼, 기타 의류 판매를 할 수 있다. 모범사례: 디즈니는 이 같은 소비자 상품으로 2016년 약 55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 블록버스터 게임에서 현금 짜내기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성공 뒤에는 똑똑한 ’반복 전술‘이 있었다. 이 회사는 놀라운 기지로 게임 개발 (또는 인수) 후 쉬지 않고 프랜차이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5대 인기 상품을 살펴보자.
콜 오브 듀티(2003년~현재)
정예 군인들이 전투를 벌인다. 이따금씩 우주가 배경일 때도 있다. 이 프랜차이즈로 현재까지 약 15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총 출시 작 수 14
판매 수 2억 5,000만 건
기타 히어로(2005~2015년)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실제 기타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총 매출은 20억 달러에 달한다.
총 출시 작 수 7
판매 수(추정) 2,500만 건
캔디 크러시 사가(2012년~현재)
캐주얼 모바일 게임에서 테트리스와 충치가 만났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2016년 이 게임의 개발업체를 인수했다.
총 출시 작 수 3
일일 액티브 유저 9,300만 명 이상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2003년~현재)
끝없이 확장하는 온라인 속의 우주 배경 롤플레잉 게임. 오크 *역주: 바다괴물와 트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무수히 등장한다.
총 출시 작 수 7
온라인 계정 수 1억 개 이상
스카이랜더스(2011년~현재)
게임과 액션 피겨가 결합된 토이투라이프 시리즈로 35억 달러 가치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TV 시리즈로도 방영됐다.
총 출시 작 수 6
판매된 장난감 수 3억 개 이상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MICHAL LEV-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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