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FCA)를 인수할 경우 세계 1위 자동차기업으로 단숨에 도약할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증권사 보고서가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지역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에서 기반을 확대하고 제품 면에서는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보강하는 선택이 될 수 있어 이같은 시나리오가 향후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지 세계 자동차업계가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은 19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기준 현대차와 FCA의 합산 판매 대수는 1,150만대로 합병 시 글로벌 1위 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차가 FCA를 합병하면 시장 트렌드에 적합한 판매구성을 즉각 보유하게 된다”며 “현대차는 SUV 라인업을 2020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시간·비용·실패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인수합병(M&A)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FCA 인수 시나리오는 지난달부터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FCA 회장이 회사 인수 대상으로 현대차그룹을 점찍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다. 일각에서는 마르치오네 회장이 회사를 현대차그룹에 팔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아 ‘자가발전’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FCA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램,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등을 보유한 글로벌 자동차그룹으로 지난해 416만대를 판매했다. FCA는 2014년 이탈리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주식을 매입하면서 탄생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재정난에 빠져 GM과 폭스바겐측에 인수를 타진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에 마르치오네 회장은 회사를 중국 창청기차에 매각한다는 얘기를 퍼뜨렸지만 이는 위장술에 불과하고 속으로는 현대차그룹에 넘기고 싶어한다는 게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돌고 있는 소문이다.
실제로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과 FCA가 합병하면 상당한 시너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현대차그룹은 중국 판매 감소로 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하는 입장인데 FCA는 유럽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현대차는 픽업트럭과 SUV 라인업이 약해 미국에서 고전 중이다. SUV의 원조 브랜드인 지프(Jeep)와 픽업트럭의 강자 RAM을 보유하고 있는 FCA를 인수하면 일거에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다. 세계 곳곳의 공장 위치 또한 거의 겹치지 않아 시장 확대 효과도 크다.
일각에서는 독일 다임러그룹,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을 떠돌고 있는 크라이슬러를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단히 기뻐할 것이고, 현대차그룹이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해 FCA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서 현대차그룹 측은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방향성조차 제시한 적이 없는 회사를 인수해서 뭘 하겠냐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최근 “자동차 회사 간 M&A보다는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와 제휴하는 한편, 친환경차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에 대해 문을 열어 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현대차그룹은 생산 물량 확대를 통한 세계 1위 달성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물량보다는 품질을 추구하라는 방침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오래 전부터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현대차의 M&A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유진투자증권은 “현대차그룹은 5조∼10조원 사이 인수 금액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인수 시 연구개발(R&D)을 공유하는 등 비용 절감으로 내부 잉여가 기존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보고서가 나온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차는 2.19%나 상승한 14만500원으로 장을 마쳤다. /맹준호·김광수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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