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SK는 SK그룹의 지주회사다. (주)SK가 올해 포춘 글로벌 500에서 95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주요 계열사의 고른 실적 덕분이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호황을 타고 고공행진을 기록해 순위 상승에 큰 몫을 담당했다. 그 밖에도 바이오·제약, 정보통신기술(ICT) 같은 미래 신사업 분야가 실적 상승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전년 대비 199계단(294위 → 95위) 순위를 끌어올리며 100대 기업에 처음 진입한 (주)SK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을 살펴보자.
올해는 SK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지난 2007년 지주사 체제 출범 이후 (주)SK(이하 SK)는 그룹 전체 지배구조의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안정화가 기반이 돼 SK그룹 전체 매출과 시가총액의 증가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이 업계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양한 성장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육성해 ‘글로벌 톱 단계(Global Top Tier)의 사업형 지주 회사로 도약해 나갑시다.” 올해 초 진행된 SK(주) 정기주주총회에서 조대식 SUPEX추구협의회 의장이 밝힌 포부다. 지난해 SK는 연결기준 매출액 83조 6,000억 원, 영업이익 5조 3,000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2배, 영업이익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최근 인수한 주요 자회사의 실적 개선과 함께 본궤도에 오른 미래 신사업 육성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되고 있다. SK가 올해 포춘 글로벌 500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폭의 순위 상승(2015년 294위→2016년 95위)을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업계에선 이번 SK의 가파른 순위 상승을 이끈 양 축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선 SK하이닉스와 SK케미칼, SK바이오팜, SK바이오텍으로 대표되는 SK 바이오 사업의 성장세를 꼽고 있다.
반도체의 힘을 증명하다
“시장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사업경쟁력 강화와 미래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시설투자 계획을 해외 법인 포함 당초 약 7조 원에서 약 9조6,000억 원으로 변경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시설투자 계획 변경’을 공시했다. 이미 결정한 투자 금액을 줄이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투자를 늘리는 건 흔치 않은 일.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투자 확충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클린룸 건설과 기반 인프라 및 연구개발 투자, D램 수요의 안정적인 대응 및 3D 낸드의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는 자각 의식이 동시에 담긴 결정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또 다시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했다. 매출 6조 6,923억 원, 영업이익 3조 507억 원, 순이익 2조 4,685억 원을 기록하며 지난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률도 45.6%를 기록하며 2004년 2분기에 달성했던 역대 최대 기록 40.1%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이에 대해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이어지며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또 회사가 그런 환경에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한 것이 적중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란 반도체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D램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3.09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2.4배 상승했다. 낸드플래시 평균 고정거래가격도 6월 말 기준 5.55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54% 올랐다. 이석희 SK하이닉스 경영지원총괄 사장도 2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SK하이닉스의 2분기 D램 출하량이 전분기 대비 3% 증가했고, 평균 판매가격 역시 11% 상승했다”며 “낸드플래시 가격이 전 분기 대비 8% 상승하는 등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가격 상승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긍정적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오는 3분기에도 서버 D램을 중심으로 SK하이닉스의 유의미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분기 실적 최대 기록을 다시 갈아치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기록 경신을 단순히 외부적 요인만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반도체 가격은 매월, 분기별로 변동 폭이 크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는 매 분기마다 전분기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외부적 요인을 상쇄할 만한 SK하이닉스만의 고유한 경쟁력과 힘이 없다면 불가능한 성과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그동안 박성욱 부회장 체제에서 ‘기술경영’ 전략을 전면에 내세워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했고, 그 결과가 지금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최태원 회장이 SK하이닉스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만큼, 앞으로도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해 D램과 낸드 플래시 새 생산라인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이를 위해 충청북도 청주와 중국 우시(無錫)에 건설 중인 낸드플래시·D램 생산라인의 완공시기를 내년 상반기에서 올해 4분기로 앞당기는 준비에 착수하기도 했다.
미래 성장 동력 ‘바이오·제약’
SK하이닉스가 이미 갖고 있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면, 바이오·제약 사업은 SK가 공을 들이고 있는 ‘미래 성장 동력’이라 할 수 있다. SK는 최근 바이오·제약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한 주요 포트폴리오로 선정하고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을 통해 다양한 신약개발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기면증제(수면장애)와 뇌전증(간질) 등 중추신경계 분야 신약 개발 등을 통해 독자 생존체계 구축에도 나섰다. 이 밖에도 SK바이오텍은 2018년을 기점으로 신약개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산 및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글로벌 제약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SK의 바이오·제약 사업이 미래가 아닌 현재에도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텍, 그리고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는 SK케미컬을 중심으로 조금씩 과실이 열리고 있다.
우선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텍은 그동안의 투자가 결실을 맺으며 실적 개선에 성공한 모양새다. 오랜 적자 행진을 이어가던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드디어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SK바이오텍도 지난해 전년대비 두 자릿수 매출·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하며 매출액 1,000억 원에 바짝 다가가는 성과를 올렸다.
SK바이오팜은 독자적인 힘으로 해외 네트워킹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핵심 콘텐츠는 SK바이오팜에서 독자 개발 중인 뇌전증 치료제 ‘YKP3089’. 뇌전증 치료제 시장 규모만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되고 있는 ‘YKP3089’는 지난해 임상 2상을 완료하고 현재는 장기투여에 따른 안전성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중 미국 시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에서 좋은 성과가 나올 경우, 오는 2018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SK바이오팜의 기업공개(IPO)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에서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업체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SK바이오텍도 전망이 밝은 편이다. 다국적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아일랜드 공장 인수를 진행하며 CDMO 분야에 첫발을 내디딘 SK바이오텍은 현재 현지 생산설비 증설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로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성장 드라이브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오는 2020년까지 매출액 1조5,000억 원, 기업가치 4조 원짜리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SK바이오텍의 ‘비전 2020’ 청사진 달성이 목표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 ‘치료제’와 ‘백신’을 기반으로 경쟁력 강화를 노리고 있는 SK케미칼은 올해를 생명과학 부문 실적 개선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SK케미칼의 주력 사업부문인 화학사업과 바이오에너지, 생명과학 가운데 지난해 유일하게 적자를 보인 분야가 바로 ‘생명과학 부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게 SK케미칼 측의 입장이다.
우선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가 지난해 미국 식품의 약국(FDA)과 캐나다에 이어 올해 유럽 식품의약청(EMA)과 호주로부터 최종 시판 허가를 받았다. 백신분야의 경우, 800억 원대로 추산되는 국내 대상포진 백신 시장을 겨냥한 제품(NBP608)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반기 내 시판 허가가 날 경우,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국 MSD의 조스타박스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SK에겐 자회사 SK E&S의 업황 및 실적호전, SK하이닉스 컨소시엄의 도시바 반도체부문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등 호재가 남아있다.
SK는 올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그 어떤 한국 기업보다 드라마틱한 순위 상승을 기록했다. 리스트 전체를 살펴봐도 SK만한 상승 폭을 기록한 기업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과연 내년에도 SK는 올해 같은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년 순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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