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 압력과 중국의 비관세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7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보호무역주의 반대와 자유무역 확대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선도연설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규탄한 데 이어 이낙연 국무총리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ASEM 경제장관회의 의장국으로서 보호무역 철폐와 자유무역 확대에 대한 장관단 성명서를 이끌어낸 것이다. 단 중국이 장관급이 아닌 왕서우원(王受文)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급)을 ASEM 경제장관회의에 보내면서 한중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는 등 중국의 경제보복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국무총리와 백 장관은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SEM 경제장관회의 축사와 개회사를 통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총리는 “세계 경제가 봉착한 첫 번째 도전은 자국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의 대두와 그에 따른 무역의 둔화”라며 “이것은 향후 세계 경제의 회복에 장기적인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보호무역은 지속 가능한 성장의 대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세계 경제의 계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무역이 필수불가결하다”면서 “이번 아셈 경제장관회의에서 자유무역과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일치된 합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ASEM 경제장관회의 의장인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개회사를 통해 “ASEM 경제장관들께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다자간 무역 체제를 지지하고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줬으면 좋겠다”며 “ASEM 회원국은 자유무역의 수혜자”라고 강조했다.
ASEM 경제장관들은 회의를 거쳐 백 장관의 제안에 따라 ‘다자무역체제 지지 공동선언문’과 ‘의장성명서’를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저항한다”, “평평한 경기장에서의 자유무역을 강화한다”, “중소·중견 기업의 기회 창출을 도모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의장성명서엔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경고와 함께 회원국 내 전자 상거래 활성화, 교통·물류의 연계, 에너지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에 대한 합의가 담겼다.
이 총리가 4차 산업혁명의 공동 대응 방안으로 제시한 ‘서울 이니셔티브’가 채택된 것도 성과다. 서울 이니셔티브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기조’를 바탕으로 △포용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창의와 혁신의 확산 △개방을 바탕으로 한 협동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원칙으로 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경제 장관들은 2018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ASEM 컨퍼런스를 통해 관련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백 장관이 공언했던 한중 통상장관 회담이 결렬되면서 ASEM 경제장관회의 개최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 장관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ASEM 경제 장관회의에서 중국 측에 경제 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중국 측은 차관급인 왕서우원 상무부 부부장을 보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에 끝까지 장관급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12년 만에 부활한 ASEM 경제장관 회의는 다시 2년마다 정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 됐다. 8차 ASEM 경제장관 회의는 2019년 유럽에서 개최될 전망이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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