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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마음, 엄마의 마음





40대 한 여인이 울면서 말했다.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 온 중학교 1학년 우리 아이에게 친구가 생겨 좋아했는데 그 친구가 급우들로부터 따돌림 받는 ‘왕따’였습니다. 우리 애도 그 아이와 친구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왕따가 됐지요. 그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 우리 애가 왕따가 됐다는 사실에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고민 끝에 그 아이와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여인은 “왕따도 감싸 안아야 한다고 배웠고 그게 어른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러질 못했어요. 오로지 이기적인 엄마의 마음만 앞선 것이 창피하고 괴롭습니다”

이 여인의 진솔한 토로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말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도서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내 인생으로의 출근-퇴근길 인문학’ 강연장에서였다. 이 여인은 ‘무릎 꿇게 하는 현실에서 나를 지키는 치유이야기’란 주제로 강사로 나선 정혜신 신경과 전문의와 이명수 심리기획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눈물로 고백했다.

이 여인을 힘들게 한 어른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갈등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어른의 마음으로는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가장(家長)의 마음과 청년의 마음, 사장의 마음과 노조의 마음 등 각기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을 펼친다.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비정규직의 정규화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제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종합편성TV와 케이블TV 등 수많은 방송사가 생겨나면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지만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많다. 비정규직이라도 다 같은 비정규직이 아니다. 근무 일수대로 급여를 받는 일용직도 부지기수다. 휴일인 달력의 빨간 날은 근무일수에서 빠진다. 임금도 최저임금수준이다. 임금으로만 따지면 한마디로 ‘열정페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임금인상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방송사 사정도 녹록치않다. 적자가 쌓여 제 때 임금을 주기도 힘겹다. 이를 맞추기 위해 외주사에 지급할 제작비를 늦추는 경우도 다반사다. 외주사의 경영난은 남의 문제일 뿐이다.

추가근무시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에게 월 평균 400만~500만원을 주면서 본인은 300만원만 가져가는 한 중소업체 사장을 잘 안다. 오래된 지인이다. 그는 일감이 몰려 직원들이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할 때 추가 근무수당을 주는데도 직원들의 눈치를 살핀다.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것을 선호하는 탓이다. 비수기 때에는 근무시간에도 놀 때가 많은데 일감이 몰려 추가 근무하는 것을 싫어하는 직원들을 보면 마냥 서운하기만 하다고 야속해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얼마를 가져가는 지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란다. 그는 직원들이 쉬어도 수시로 월화수목금금금 일한다. 올해는 여름휴가도 못갔다.

청년취업과 정년연장 문제로 부각된 임금피크제 역시 제도의 취지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한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마음으로 돌아서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제 회사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금마저 줄어들면 취직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캥거루족 자식과 병원을 들락거리는 노부모 봉양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청년고용 확대와 정년 연장에 따른 고비용 구조에 대한 경영진 측 고민을 이해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런 것들이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게 지금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를 하나로 모아야할 정치권은 가관이다. 안보문제까지 진영논리로 어지럽다. ‘머리 따로, 입 따로’다.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은 하품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인 듯 싶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기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법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눠야할 파이가 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다 알고 있다. 이를 헤쳐 나가는 길은 경영자든, 직원이든, 정치인이든 간에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보다는 어른의 마음으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대타협을 이뤄내는 게 절박하다. 상생도 그래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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