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에 투자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펀드가 있을까. 노르웨이 국부펀드(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GPFG)는 해외자산만 대상으로 윤리적 투자와 수익률을 동시에 챙긴 연기금이다. 세계 최대 규모인 1,177조원의 자산은 해외주식과 해외채권에 7대3으로 투자한다. 북해 석유로 벌어들인 크로네는 글로벌 기업의 장기성장에 투자됐다.
단순하지만 일관된 GPFG의 투자전략은 최근 1년 20.31%의 수익률로 글로벌 연기금 중 가장 훌륭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20년간 연평균 수익률도 5.3%로 안정적이다. 위기관리도 탄탄하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GPFG의 해외투자 수익률은 -40.71%로 국민연금(-58.69%)보다 양호했다.
GPFG의 성과는 비윤리적 기업에 투자를 철회하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수익만 높다면 전쟁과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착취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의 탐욕에서 벗어났다. 마르테 스코르 GPFG 대변인은 “우리는 환경·사회·지배구조에 근거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우수하고 효율적인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6월 말 기준 GPFG는 전 세계 77개국 8,985개 기업의 주식에 765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올 초에는 노르웨이 국회에서 펀드 자산 중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60%에서 70%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돼 해외투자 비중은 더 늘었다. 주식 비중이 10%포인트가 늘어나 글로벌 주식시장에 684억달러를 유입시켰고 한국시장에는 1조1,800억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자산 1,177조 세계 최대 규모
해외주식·채권에 7대3 투자
환경·지배구조·사회 등 중시
착한투자로 책임·수익 다 잡아
FAANG 임원 연봉 인상 반대
강력하고 깐깐한 주주권 행사
비윤리 기업 투자 회수하기도
GPFG는 애플에 8조3,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에도 6조1,000억원을 투입했다. 그 밖에 삼성전자(005930) 등 아시아와 중동·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다양한 업종의 대표 기업에 투자하며 위험을 분산했다. 국내 주식 투자의 20%를 삼성전자로 담은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부러운 포트폴리오다. GPFG는 1·4분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업종으로 좁히면 반도체와 전자상거래에서, 종목으로는 애플과 삼성전자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냈다. 반면 2·4분기에는 유럽의 헬스케어 업체 노바티스에서 높은 수익을 거뒀다. 지역과 업종별로 엇갈리는 포트폴리오로 주식의 리스크를 충분히 헤지하고 있다.
GPFG의 영향력은 수익이 아니다. 연기금의 크기만큼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한다. 전 세계 35개국에 550명을 파견해 경영진의 보수부터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깐깐하게 주주권을 행사한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센티브 구조를 5~10년간 묶인 주식으로 지급하고 보수 상한선을 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의미하는 ‘팡(FAANG)’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임원 연봉 등 다양한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적극 행사했다. 최대주주로 이사 임명안에 반대표를 던져도 경영진이 콧방귀도 뀌지 않지만 수익률에 발목 잡혀 지분도 못 파는 국민연금이 안타깝다.
GPFG의 원칙은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투자중단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석탄으로 인한 매출이 30%가 넘거나 환경오염, 핵무기 제조, 인권침해, 노동력 착취, 기업 내 비윤리적 행위 등을 위반하는 기업은 투자금을 회수한다. 국내 기업 중에도 한국전력·포스코·한화(000880)·대우인터네셔널 등의 투자를 중단했고 예스24는 베트남 공장에서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며 모회사인 한세홀딩스를 철회 고려 대상에 올렸다. 이는 기금의 95%를 직접 운용하는 GPFG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 퀀타비움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를 지낸 영주닐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GPFG는 위험을 보상받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확실히 요청하기 때문에 다른 연기금에 비해 주식 비중이 훨씬 높다”면서 “2008년 이후 다른 유럽 연기금들이 주식 비중을 낮출 때 GPFG는 자산배분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손실을 빨리 회복했다”고 진단했다.
GPFG의 틀은 노르웨이 국회가 의결한 법에 따라 재무부가 투자 지침을 내리고 중앙은행이 운영한다. 중앙은행이사회가 산하 운용사에 맡기며 운용사는 최고경영책임자와 이사회 역할을 하는 리더그룹, 각 분야의 자문위원회가 보좌하는 구조다. 국회와 정부의 관리 아래 별도의 운용조직이 있는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과 다르지 않지만 수익률 논란은 없다. 분기마다 투자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고 의결권을 행사한 다음 날 홈페이지에 알린다.
이달 초 노르웨이에서도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복지를 위해 펀드 수익금을 지나치게 많이 국가 재정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해에는 펀드가 번 수익보다 약 14조원 많은 돈을 정부가 가져갔고 올해 상반기에는 노르웨이 환율 변동의 결과로 수익이 줄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연기금 전문가인 로버트 머튼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어느 나라나 국부펀드는 정치적·경제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는 목표에 반영돼야 한다”면서도 “국부펀드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국가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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