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의 한 주상복합에 사는 주부 이모(44)씨는 생활용품은 ‘애터미’, 건강기능식품은 ‘허벌라이프’, 화장품은 ‘주디스리버’ 제품을 사용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단계 브랜드라는 것. 이씨는 이들 브랜드의 회원이지만 제품이 좋아 가입만 해서 사용할 뿐 실제 전업 또는 부업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씨는 “이미 합법적인 다단계나 방판 브랜드의 제품 품질이 좋아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은 지 오래”라며 “과거와 달리 다단계 제품을 쓴다고 색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지만 불법 다단계 탓에 여전히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이미지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다단계판매업체에 등록된 전체 판매원 수는 전년 보다 4.1% 증가한 829만명으로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이 다단계판매업과 관련을 맺고 살고 있다. 이 중 전업 또는 부업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회원 보다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가입한 소비자형 회원이 667만명으로 전체 회원 중 80%를 차지한다. 그 만큼 소비자들이 생활 밀접형 다단계 제품을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등록해 제도권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단계판매 시장 규모는 지난해 총 5조 1,306억 원에 달해 전 세계 3위다. 2007년 1조 7,743억 원이던 규모가 10년간 연평균 9.9%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단계판매업은 이제 유통산업의 건전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산업의 건전한 축…“불법 다단계와 혼동, 인식 전환 필요”=다단계판매업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합법적인 판매방식의 하나로 회원 간 직접판매방식만을 의미한다. 현행법에 규정된 합법적인 유통판매방식의 하나지만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불법피라미드’와 ‘유사수신행위’ 단속 및 적발시 ‘다단계’라고 혼용해 표기함으로써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다단계판매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네트워크마케팅’이라는 용어로 쓰이는 다단계판매업을 유통산업의 큰 축으로 여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좋은 네트워크마케팅 회사를 찾아 일할 것”이라며 “이것이 내가 이 자리에 올라와 있는 이유”라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다단계 판매를 사행성을 유발하고 소비자 피해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는 판매방식으로 보는 옛 시각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사후 제재 중심의 현행 규제에서 위법 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사전 예방적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소비자들의 다단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어떤 제품이 좋고, 그것을 판매하는 회사 또한 신뢰할 수 있는지, 가격이 합리적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기능식품(55%)과 화장품(19%) 및 생활용품(18%)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유통한다는 점에서 이들 제품 위주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다단계 업체 관계자는 “이미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고 회원을 가입해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슈가 있거나 제품이나 마케팅 방법에 대한 불신이 있을 경우 곧바로 외면해 합법적인 다단계 업체들은 더욱 건전하게 네트워크 마케팅을 펼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다단계 제품을 사용하는 배경에는 직접판매 유통방식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판매원이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맞춤형 설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다단계 회사는 재구매가 일어나야 존속할 수 있어 구전 마케팅이 거의 전부”라며 “다단계 회사의 경우 재구매가 이뤄져야 존속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력이 뒷받침된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소비자 안전 장치 역할 톡톡히=세계 3위 수준의 다단계판매 시장으로 클 수 있었던 데는 불법업체로부터 끊임없이 소비자 피해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다단계의 긍정적인 기능의 홍보에 노력을 기울여 온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의 소비자피해보상기관인 ‘공제조합’과 같은 안전 장치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곳이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한국특수판매조합(이하 특판조합)이다. 특판조합은 2002년 설립인가를 받은 후 신속한 피해보상과 소비자와 회원사가 상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다단계판매가 건전한 유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정 작업을 벌어 왔다.
특판조합은 다단계판매업으로부터 매출 예상액의 일정비율을 담보금으로 받아두고 다단계판매업자가 소비자의 청약철회에 따른 환급의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소비자에게 공제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보증기관으로서 다단계판매업과 후원방문판매업의 공제업무를 담당한다. 지난해 말 기준 회원 조합사들이 지급한 출자금 및 담보금은 1,050억원이며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소비자피해 보상금 지급건수는 1만8,031건, 지급액은 166억원에 달한다.
특히 특판조합은 2014년 12월 고인배 특판조합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다단계판매업의 자정노력을 통한 이미지개선과 신뢰구축에 더욱 힘써왔다. 그는 취임 후 역점사업으로 불법유사수신업체 퇴출을 통한 다단계판매업계의 소비자 신뢰 강화, 조합 내부 시스템 강화를 통한 조합사에 대한 경영지원, 업계의 미래성장을 위한 해외 시스템 강화 등을 꾸준히 추진했다. 업계에서는 올해로 마지막 임기를 수행 중인 고 이사장이 소비자 보호와 회원사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 특판조합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고 이사장은 최근 회원사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현행 규제 중심의 방판법완화 개정과 관련해 “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인데 업계가 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다단계업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 불법업체를 없애고 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으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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