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지원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최악의 실패도 초래했다.
그 어떤 산업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 세계의 주요 관계자들은 자신들만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최근 한 벤처 캐피털리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그런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그는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이 모든 스타트업을 지원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힘든 일”이라며 “업계에 있는 이들이 스타트업을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기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타트업 세계는 지속적인 과대포장과 선망을 기대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인다. 만일 계획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쉿! 우리는 지금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스타트업이 실패해 헐값에 자산이 처분된다 해도, 돈을 모두 잃은 투자자들은 트위터에 #CrushingIt *역주:‘아주 끝내줬어’, 잘‘ 했어’ 라는 긍정적인 의미 이라는 활기찬 해시태그를 올릴 것이다.
목재 산업이나 의류 산업 같은 다른 업계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강요된 동지애(forced camaraderie)’다. 하지만 이 동지애 덕분에 실리콘밸리, 실리콘앨리, 실리콘비치, 실리콘슬로프가 그토록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산업이 아닌 하나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료가 아닌 친구, 직업이 아닌 소명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 연결된다. 하나의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직원과 소비자, 파트너, 투자자, 투자자의 투자자 그리고 심지어 경쟁자까지 생태계의 모든 당사자들이 혜택을 입는다.
하지만 스타트업 세계의 대표 기업 우버가 독소적인 사내 문화로 인해 침몰하는 것을 보면, 서로 미워하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no-haters rule)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버에서 다수의 유명 투자자들이 여성 동료들을 성추행 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에서, 이런 규칙은 완전히 시대에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 9명의 녹취로 드러난 성추행 고발 소식에 대중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동료 투자자들은 보도 매체를 통해 피의자들의 행동을 규탄하고, 서약과 개혁도 제안했다. 하지만 스타트업계의 많은 지지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몇몇은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과 성관계 강요, 그리고 부적절한 언사를 폭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그런 일들을 완전히 끝내버릴 수 있었음에도-이를 외면했다.
보도에 따르면, 저스틴 콜드벡 Justin Caldbeck과 데이브 맥클루어 Dave McClure, 그리고 다른 유명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해당사건이 알려져 성추행 기소가 되기 전까지 그렇게 수 년 동안 해당 행위를 반복해왔다. 콜드벡은 자신의 전직장 라이트스피드 Lightspeed의 여성 창업자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벤처캐피털 펀드를 유치할 수 있었다(라이트스피드는 해당 사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지만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우리는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우리가 더욱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피해자가 콜드벡의 행위를 고발하는 데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스타트업 세계가 내부 고발보단 내부 결속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의 산업 환경은 더욱 그랬다.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내부 고발에 나선 사람들 덕분에, 서로 미워하지 않는 규칙이 점차 퇴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려면, 스타트업 스스로가 자기 비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Erin Griff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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