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지영(32)씨는 얼마 전 키우고 있는 고양이의 생일을 맞아 유전자검사를 선물했다. 동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의 나이가 많아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느라 5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지만 최씨는 요즘 반려동물을 기르는 회사 동료와 친구들에게 유전자검사를 꼭 받아보라고 권유하고 다닌다. 최씨는 “유전자검사에서 고양이 돌연사의 원인인 비대성 심근증 증세를 확인해 다행히 조기에 치료할 수 있었다”며 “비용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유전자검사를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는 다음달 17일 관악캠퍼스에 최첨단 동물병원을 새로 연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스마트 동물병원으로 진료 예약부터 접수와 수납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무인 시스템이 적용된다. 반려동물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전자태그 목걸이를 착용하고 곳곳에 위치한 센서는 실시간으로 반려동물의 위치와 진료상황을 보호자에게 알려준다. 진료실에는 전자패드를 구축해 자동으로 반려동물의 맥박과 체온 등 기본적 생체정보도 수집한다. 서울대는 스마트 동물병원을 반려동물 질환 연구의 전진기지로 삼는 한편 다른 병원에 수출하는 사업 모델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반려동물을 위한 ‘펫 헬스케어’ 시장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바이오제약 기업은 미개척지인 반려동물 항암제 시장에 잇따라 출사표를 내놓고 있고 반려동물 전용 진단기 등 가전제품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시장은 아직 국가별 격차가 크지 않아 국내 기업도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면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가정에서 자라는 반려동물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당뇨·고혈압·비만 등 노령성 질환에 걸리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단순한 영양제를 넘어 반려동물의 질환까지 치료해주는 전문의약품 개념으로 의약품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반려동물 의약품 중 항암제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동물용 항암제는 아직 개발에 성공한 제품이 없어 현재 사람용 항암제의 성분과 용량을 일부 변경한 제품만 있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사람용 항암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개·고양이·쥐·앵무새 등 반려동물의 특성과 체질을 겨냥한 항암제를 완전히 새로 개발하고 있다.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 1위를 달리는 화이자는 지난 2013년 동물의약품사업부를 분사해 동물의약품 전문기업 조에티스를 별도로 설립했다. 조에티스의 글로벌 동물의약품 시장 점유율은 20%에 이른다. 최근에는 IBM의 인공지능(AI) 컴퓨터 ‘왓슨’을 활용해 반려동물 항암제 개발에 나서는 등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베링거잉겔하임이 각각 동물의약품사업부와 일반의약품사업부를 맞바꾸는 빅딜을 체결해 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거래금액만도 180억유로(약 23조9,000억원)로 베링거잉겔하임은 동물의약품 시장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올해로 동물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지 100주년을 맞은 바이엘도 기존에 주력했던 상업용 농장동물에서 나아가 반려동물 시장을 정조준할 방침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반려동물 치료제 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플럼라인생명과학은 내년 미국 출시를 목표로 유전자 기반의 강아지 항암제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간 600만마리의 강아지가 암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어 상용화에 성공하면 연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한다. 이 밖에 제이비바이오텍도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적용한 반려동물 백신 개발에 나섰고 툴젠은 유전체 교정 기술을 접목한 반려동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반려동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질환이나 혈통을 알 수 있는 유전자검사도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병원에서 검사할 수 없는 유전성 질환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의료적 장점 외에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혈통이나 성별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수요가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마크로젠은 2015년 업계 최초로 반려동물 유전자검사 서비스 ‘마이펫진’을 내놓았다. 반려동물의 구강 상피세포를 면봉에 묻혀 택배로 보내면 질환·혈통·성별 등의 정보는 물론 어떤 품종과 교배하면 후손에게 질환이 유전되는지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앵무새 같은 조류는 외관으로 성별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유전자검사로 정확하게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친자확인을 위해 검사를 의뢰하는 고객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을 이어가자 가전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북미수의학회에 동물용 혈액검사기 ‘PT10V’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동물 혈액을 이용해 간·신장·대사질환 등 13개 항목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다. 동급 제품보다 3분의1 수준으로 크기를 줄이고 검사시간도 10분 이내로 단축한 것이 특징이다. 소형제품이지만 실험실용 전문장비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춰 학회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위닉스는 반려동물 전용 공기청정기 ‘위닉스펫’으로 차별화에 나섰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털 날림을 효율적으로 잡아주는 별도의 필터를 장착했고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스마트폰으로 공기청정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신일산업은 반려동물 전용가전 브랜드 ‘퍼비’의 첫 제품으로 스마트 배변훈련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강아지가 패드에 배변하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간식을 제공한다. 벤처기업 두잇은 목욕 후 반려동물의 털을 자동으로 말려주는 텐트형 털 건조기 ‘드라이하우스’를 출시했다. 앞서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진행한 사전판매에서는 3일 만에 목표금액인 1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아직은 전체 반려동물 시장에서 사료가 절반을 차지하지만 저가 필수품에서 고가제품으로 시장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고령화와 비만으로 반려동물 질환이 급증하면서 반려동물 의약품이 차세대 블루오션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