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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편법 상속·증여]똑같이 30억 물려주는데…상속·증여따라 세금 3억이나 차이

'상속=유산세형·증여=유산취득세형' 제도 70년째 그대로

차명주식 처분 제어장치 없어…상속·증여 수단으로 악용

일감몰아주기 제재에 중기는 빠져…은밀한 상속 통로로

'富의 대물림'에 관대한 인식도 느슨한 감시·편법 키워







자산가 김씨는 숨을 거두면서 30억원의 유산을 자식 세 명에게 남겼다. 유산은 세 명이 똑같이 나눠 가지도록 했다. 자식들은 총 12억원의 상속세를 국가에 냈다. 그런데 똑같이 자식 세 명에게 30억원을 생전에 ‘증여’한 자산가 이씨 집안은 세금을 9억원만 냈다. 상속이나 증여나 재산을 물려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인데 세금은 3억원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이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상속세와 증여세의 과세 방식이 각각 ‘유산세형(상속 총액에 과세)’과 ‘유산취득세형(개인이 받은 금액별로 과세)’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재산을 똑같은 수의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증여 방식이 상속 방식보다 과세 표준이 더 작아져 세금도 낮아지는 결과가 벌어진다. 이 때문에 세금 문제에 민감한 대자산가들은 일찌감치 재산을 여러 자식과 손주들에게 증여하는 것을 선호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후보자의 딸처럼 미성년자임에도 거액의 부동산·주식을 물려받는 ‘슈퍼금수저’가 많아지는 이유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임대소득을 올리며 세금까지 내는 미성년자는 지난 2013~2015년 5,538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얻은 임대소득은 연평균 1,993만원. 성인들의 평균 임대소득보다도 124만원 많다. 주식을 물려받아 배당소득을 올리는 미성년자 역시 3년간 1,693명이나 됐다.

상속세와 증여세 간 과세 방식 차이는 자산가들이 양도소득세를 적게 내는 꼼수를 부리는 데도 이용된다. 재산 양도 시 과세 표준이 상대적으로 큰 상속 방식을 통함으로써 10억원에 이르는 상속공제를 최대한 활용하는 식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상속세도 유산취득세형으로 일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녀 각자가 물려받은 재산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이 공평과세에 부합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1950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정 이후 70년이 다 돼가도록 제도를 고치지 않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산취득세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개선이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허술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기업의 편법적인 상속·증여를 부추긴다.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은 2012년 장남 준영씨에게 그룹의 지주사 격인 올품의 주식을 100% 증여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그룹은 이후 일감을 올품에 몰아줘 주식가치를 키웠고 준영씨는 주가가 오른 올품의 유상 감자를 통해 증여세를 납부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이처럼 편법 상속·증여 과정에서 악용되는 측면이 있음에도 대다수 기업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에만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이 상속·증여세 면제 혜택 때문에 편법 상속·증여 수단으로 활용하는 공익재단 역시 제도 악용을 막는 장치가 없지만 정부는 제도 개선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차명 주식은 편법 상속·증여 수단으로 이용되곤 한다. 기업 대표가 본인 소유 주식을 임직원들 명의로 돌려놓았다가 명의신탁 주식을 여러 우회 통로를 거쳐 2세에게 주도록 하고 상속·증여세를 피하는 식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차명 주식 관련 법 제도는 허점이 많아 각종 편법에 악용된다”며 “부동산처럼 명의신탁 거래 자체를 무효로 규정하는 ‘주식실명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측면 외에 사회 전반적으로 부의 대물림에 관대한 의식 또한 편법을 키우는 요소다. 최근 홍종학 후보자의 편법 증여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행위였다”며 홍 후보자를 옹호했다. 홍 후보자의 딸이 11세의 나이에 8억원 상당의 자산을 물려받고 증여세를 내려고 어머니로부터 약 2억원을 빌린 뒤 그 돈을 임대소득으로 갚는 방식에 불법은 없을지언정 국민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홍 후보자를 감싸는 청와대를 두고 “국가 최고위층마저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인식은 일반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5,000만원 이상의 증여는 세금 부과 의무가 따르나 부동산 거래 등 과정에서 그 이상의 돈을 자식에게 주고 ‘자식 돕는 건데 눈 감아주겠지’라는 생각이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과세 당국의 느슨한 감시도 안이한 인식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 과세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액이 크지 않은 차명계좌·주식, 전세자금 지원까지 제재하면 반발이 커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이 강남 지역 다주택 보유자 등의 변칙 증여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에 나서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은 그동안 편법에 관대했다는 방증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병목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부모·자식 간 차용 거래에 대해 너그러운 분위기가 편법을 키운 게 사실”이라며 “5,000만원이 넘는 모든 거래를 규율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부분 감시를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지난 6월2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상속·증여세제 개선방향에 대한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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