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8대 임금 현종은 사생아 출신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고 신혈사(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승려 진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수차례 암살 위기를 겪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절 아래 토굴을 만들어 숨어 지낼 정도였다. 마침내 그는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이후 두 차례의 거란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등 고려 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다.
정동극장에서 26일까지 펼쳐지는 탈춤극 ‘동동’은 이 현종의 성장기를 주제로 한 창작극이다. 고려시대 국가적 행사이자 ‘역사상 가작 화려했던 카니발’ 팔관회를 배경으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하룻밤의 일탈 이야기를 탈춤으로 꾸몄다. 비천한 출생 배경으로 유약했던 현종이 강감찬 장군의 탈을 쓰고 궁 밖을 돌아다니며 자아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탈’은 캐릭터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용맹한 장군이던 강감찬이 자신의 탈을 잃어버려 각시탈을 쓰고 마치 여성이 된 것처럼 ‘섹시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연극이라면 캐릭터의 성격을 맥락 없이 바꿔 극의 집중을 깨버릴 설정이지만, 탈춤극이니까 괜찮고 잘 어울린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원래 여성인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흔히 탈춤에서 배우가 탈을 벗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동동’은 탈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극적인 요소를 배가한다. 현대인의 삶이 직업, 지위 등 사회에서 만든 ‘가면’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이런 설정은 오히려 낯익고 공감된다.
탈춤을 극으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탈을 쓰면 표정 연기가 어려운 만큼, 몸짓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작품은 뮤지컬. 화려한 군무 직후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통 탈춤이 가진 ‘양반 풍자’, ‘삶의 애환 토로’, ‘승려들의 위선 고발’에서 벗어난 서사구조는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고 현대적이다. 그러면서도 탈춤이 가진 고유의 역동성을 잘 살아있다. 극 곳곳에 현대와 전통의 결합을 시도한 점은 특히 돋보인다. 국악기에 피아노와 베이스기타를 곁들인 음악들은 마치 뮤지컬 넘버처럼 들린다.
아쉬운 점도 있다. 탈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 음향의 차이가 꽤 있다. 탈마다의 음향 차이도 있는 편이다. 탈을 벗었을 때만큼 깨끗하게 대사가 들릴 수는 없겠지만, 어떤 탈은 깨끗하게 대사 전달이 되는 만큼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심지어 어떤 탈은 대사를 알아듣기 어려웠다. 탈을 쓰기 전의 목소리와 비교해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전통창작공연이지만 젊고 새롭다. 연출가 육지는 “일본,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동안 탈춤이 극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마당에서만 머물렀다”며 “서양에서 들어온 극장이라는 공간에 맞기 탈춤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가다듬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탈춤’은 마당 뿐 아니라 극장에도 잘 어울렸다. 탈춤과 굿과 판소리와 뮤지컬의 결합은 성공적이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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