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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암 치료 혁명] 유전자 교정기술 면역항암제에 결합해 글로벌 격차 좁혀야

<하>골리앗 맞설 한국의 다윗 키우려면

제조업에 강한 특성 살려 생산분야서 경쟁력 확보 가능

기초연구 없이는 신약개발 불가능..체계적 지원 절실

엄청난 비용에 희망 포기않도록 의료 접근성 해결 필요





#직장인 김정현(42)씨는 최근 췌장암 4기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항암 치료를 위해 일본의 한 병원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사이클 치료를 받는데 수천 만원의 비용이 드는데다 숙박·통역 등의 기타 경비까지 합치면 경제적 부담이 엄청나지만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막막한 심정으로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검색하다 알게 된 정보인데 국내에서는 규제 탓에 쉽게 시행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며 “사람에 따라 효과가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하루하루가 소중한 말기 암환자의 가족으로서는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9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시판 승인을 받은 세계 최초의 항암 유전자치료제 ‘CAR-T. 더 이상 치료제가 없는 불응성 급성백혈병 환자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치료비가 환자 1인당 47만 5,000달러(약 5억3,000만원)라는 사실이 발표되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돈이 없으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논란 속에서 치료제 개발사인 노바티스는 “치료 후 한 달 안에 반응이 없으면 전액 환불하겠다”는 보상 방식을 제안하는 등 여러 접근법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결국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한정적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세계 시장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난 암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혁신적 치료제의 등장이 가져다주는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가격. 면역항암제나 세포치료제 등 최신 암 치료제의 경우 최첨단 생물공학 방식으로 제조되는 바이오의약품으로, 대량생산이 쉬운 화학제제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다. 국내에 치료법이 아예 없거나, 규제가 걸림돌이 돼 사용이 금지되거나, 해외 개발 의약품이 수입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모되는 일 등도 시급을 요하는 환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비용이나 시간의 여유가 충분한 사람들은 치료가 가능한 해외 병원을 직접 찾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국내에서 치료가 가능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가격 등 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란 결국 더 많은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출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일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프레드 람스델 파커암면역요법연구소(PICI) 부연구원장은 “개인용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라며 “많은 제약사들이 혁신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경쟁적으로 제품을 생산한다면 가격은 자연스레 하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수십, 수백 개의 바이오벤처와 제약사들이 연구개발 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라며 “세포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끔 하는 연구개발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기에 가격이나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 문제는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낙관했다.

문제는 글로벌의 뜨거운 경쟁이 한국에서는 크게 감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면역항암제 및 첨단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지난해 임상시험 승인 현황에 따르면 전체 항암제 임상은 202건이고 이중 면역항암제는 68건에 그쳤다. 국제 임상시험 등록사이트에 등록된 미국·유럽의 면역항암제 임상만 합해도 1,200건을 훌쩍 넘어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바티스나 길리어드사이언스, MSD 등 다국적 제약사가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면역세포치료제 CAR-T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최대 제약 시장을 가진 미국이 97건으로 선도하는 가운데 중국(66건), 유럽(14건)이 뒤를 잇고 있다. 일본, 호주, 캐나다도 관련 임상이 진행 중이지만 한국은 하나도 없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고 신약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면역항암제 등 첨단 치료법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골리앗에 맞설 다윗을 키우는 해법으로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표적항암제 ‘타그리소’가 국내 건강보험에 등재된 사례를 눈여겨보길 권했다.

‘타그리소’는 높은 치료 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세계 폐암치료제 시장을 점령했지만 검사비 등을 포함해 연간 치료비로만 1,000만원이 훌쩍 넘어서는 비싼 약값 탓에 치료를 포기하는 국내 환자들이 많았다. 약가 조정을 통해 급여화하려는 건보당국의 계속된 노력은 최근에야 겨우 결실을 맺었는데 배경에는 한미약품이 개발한 국산 신약 ‘올리타’가 이었다는 분석이다. 폐암 치료제의 대체제로 ‘올리타’가 주목받자 다국적제약사가 한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기회를 잡기 위해 정부가 관련 분야에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년 전부터 면역학 연구를 지원한 끝에 신약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미국의 사례를 들어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신의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기존 항암제가 대규모 후보 물질 스크리닝 등을 통해서도 개발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면역항암제는 탄탄한 기초 연구가 뒷받침돼야 신약으로 개발이 가능하다”면서 “대학과 업계가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해서 연구가 진행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순명 연세대 의대 종양내과 교수 역시 “제약사가 의뢰해서 임상이 이뤄지는 현 방식이 아니라 임상 전문 연구진이 연구를 진행하고 업계와 소통하면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면서 “제약사의 수요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의 수요에 따라 임상 연구가 진행돼야 신약 개발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제적인 개발에는 실패한 만큼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컨대 제조업에 강한 특성을 살리면 생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면역항암제는 세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한 국가에서 만들어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기 쉽지 않고 각 국가에서 동일한 질을 유지하며 처방하는 게 어렵다. 다국적 기업이라도 국내 생산 시설을 활용해야 하는 등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에는 기회인 것이다.

학계에서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우수 기술력을 가진 유전자 교정을 접목해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는 방법 등도 제안하고 있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사람별로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만큼 이에 대한 유전적 분석 기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샌프란시스코=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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