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가치가 높다는 내용의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실사 결과 보고서가 금융당국에 잠정 보고된 것으로 19일 알려지면서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에 대한 구조조정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실사 보고서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조선 업황이 침체되면서 추가 수주가 어려운데다 이르면 연말께 그동안 수주해놓은 물량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처리를 놓고 고심하는 흔적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내년 지방선거 일정을 감안해 미리부터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논리에 따라 진행해야 할 중소조선업 구조조정 작업이 자칫 정치 논리에 휘둘려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지역 경제를 위해 경쟁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성동조선이나 STX조선 같은 중소 조선사들을 살리고 가자’는 명분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대출을 연장해주거나 신규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채권단은 부실을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정부가 예산을 통한 자금 지원에 나설 경우 기업들의 연명은 가능하지만 근본적 구조조정은 요원해지는 것이다.
실제 정부 역시 정치 논리에 휘둘려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 조선 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파트를 담당하는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 등 유관 부처의 실무자들을 불러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동조선 해법을 논의했지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청산이든, 회생이든 분명한 대원칙을 갖고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도대체 기재부가 무슨 원칙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관 부처들 사이에서는 “구조조정은 원래 금융위 몫” “산업재편의 큰 그림은 산업부 책임” “결국 총괄은 기재부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 ‘핑퐁게임’ 식 떠넘기기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정권 때 정부가 구조조정 컨트롤 기구로 신설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긴급한 STX조선 선수금환급보증금(RG) 문제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관계장관회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 당국과 국책은행이 이끄는 구조조정을 두고 ‘임종룡(전 금융위원장과) 같은 해결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자주 나온다. 임 전 위원장이 주도한 한진해운 청산이나 대우조선 회생은 아직 결과를 논하기 이른 단계지만 당시 임 전 위원장은 결과를 떠나 ‘내가 책임진다’는 확실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방향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산업은행은 STX조선에 대해 오는 23일이 마감 시한인 중형 탱커선에 대한 RG를 승인해 야드는 돌리되 수주영업 조직에 대해서는 인원 감축을 진행,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밟게 하는 일종의 ‘소프트 엑시트(soft exit)’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시한을 둬 조선 업황이 살아나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반면 성동조선의 경우 이미 3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된 상황이기 때문에 추가 지원을 통한 연명은 곤란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힘이 있는 산은이 관리하는 STX조선은 살아나고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수은이 관리하는 성동조선은 그 반대의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비슷한 두 기업(성동조선과 STX조선)에 대해 다른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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