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진 1,090원대마저 무너지면서 2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비록 원화 강세가 우리 경제의 체력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락(원화 강세)의 속도가 너무 가팔라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제품경쟁력 등만을 가지고 수출전선에서 버티기에는 가격 지지대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6원70전 내린 1,089원10전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지난 2015년 5월22일(1,088원80전) 이후 가장 낮다.
원·달러 환율 하락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북한 리스크가 많이 희석됐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3.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캐나다와 기한과 한도 없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연장됐다. 이뿐 아니다. 국내 자본시장으로 외인 자금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원화의 가치를 더 끌어 올렸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증가 등도 원화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원화 강세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한국 경제가 안정돼 있고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환율이 떨어지는 속도다. 최근 7거래일간 무려 30원 넘게 하락했다. 이로 인한 직접적 충격은 수출업체들에 가장 먼저 전해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중소 수출업체들은 당장 거래가 끊길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자칫 최근 수출 주도 경제 성장세가 꺾일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통화가치 급변은 가계와 기업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경제 전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수출기업들 중 상당수는 원화 강세 탓에 애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이 1,184원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외환 당국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17일 환율 하락속도가 너무 빨라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비공식 구두개입을 했을 뿐 적극 방어하는 모습은 아니다. 금융시장에서는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때문에 외환 당국이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구두개입을 통해 환율이 천천히 움직이도록 조정해야 한다”며 “통화가치를 조정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목표인데 그런 고유권한까지 미국이 환율조작이라고 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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