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문명사적 대전환을 향한 혁신의 바람이 한창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혁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혁신지수는 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세계혁신지수에서 4년 내리 1위를 차지하며 50개국 중 연구개발(R&D) 예산, 제조업 부가가치, 특허등록 등에서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생산성은 32위로 밀려 블룸버그는 “가장 혁신적인 나라가 생산성에서는 뒤진다”고 평했다.
한편 세계지적재산권기구 등이 발표하는 글로벌혁신지수에서는 11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혁신지수에서는 20위였다. 특히 과학자·기술인력 확보, 특허협력조약, 특허출원 건수, 지식재산권 보호지표 등에서 하위권이었다. WEF 혁신지수가 낮은 것은 플랫폼·자본 등 전통적 혁신요소는 갖추었으되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달 혁신성장 정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정부의 민간 서포트 타워 역할, 신속한 규제 혁신,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컨트롤이라는 용어가 서포트로 바뀐 것 자체가 혁신으로 읽힌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성장률과 WEF의 글로벌혁신지수 순위가 지난 10년간 동반 하락한 ‘불편한 동행’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으로 과학기술·산업·사람·제도 4개 부문의 혁신을 강조했다. 지능화 기술 경쟁력 강화 부문에는 오는 2022년까지 2조2,000억원의 R&D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이들 재정 투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 커뮤니티와 혁신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혁신에 최고의 방법은 융합이고 융합에 최고의 수단은 협력이기 때문이다. 여성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기업가형 국가’의 분석이 시사적이다. 기업가형 국가는 개방적 환경으로 R&D 실적이 좋고 혁신 기업이 계속 생겨나는 국가를 뜻한다. 저자는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들어 R&D 예산 증액보다 혁신 시스템에 의해 투자 대비 성과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특히 귀를 기울여야 할 권고다.
기업가형 국가 모델에서 핵심은 기업가정신과 규제 혁신이다. 역사 속에서 영국의 1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인은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한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이었다. 그런 영국이 2차 산업혁명에서는 독일과 미국에 완전히 자리를 내준다. 1865년의 ‘붉은깃발법’이 상징적으로 그 상황을 설명해주는 듯하다. 정부가 마차와 기차산업 편에 서 증기자동차의 속도를 마차 수준으로 묶고 자동차에 화부, 붉은 깃발 기수, 밤에 붉은 등을 드는 세 사람을 타게 만든다. 이 황당한 법은 1896년에 가서야 일부 완화된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혁신성장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이 핵심 동인이다.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는 20년 전 기업가정신이 가장 돋보이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GEI)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2위로 30년 전에 비해 반 토막 수준이다. 신성장동력 창출의 엔진인 기업가정신과 과학기술계의 창의성·자율성을 살릴 가장 유력한 수단은 규제 합리화다. 하지만 규제 혁신은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과 구조적 한계로 험난하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규제 샌드박스로 보이는데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속도전인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핀테크 등의 분야에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고 사후 규제를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배아줄기세포 연구, 유전자가위 기술 연구의 허용 범위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모니터링에 따라 수정 보완하는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로써 국가가 기업 하기 좋은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실패가 용인되는 테스트베드(시험장)를 제공하며 학계·연구계-기업-정부-시민사회의 다중나선 혁신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분명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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