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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경상남도 남해군]굵게 잡힌 주름살처럼 층층이 쌓인 다랭이논...고된 삶의 흔적을 보다

108개 계단에 걸쳐 산재한 680개 논

3평짜리서 300평까지 면적도 다양

독일마을 한켠에 있는 파독전시관

다채로운 기록 관광객 발길 붙들어

금산 정상 아래에 자리잡은 보리암

바다와 어우러진 풍광에 가슴이 뻥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어업과는 무관하다. 해안절벽을 끼고 있어 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모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기자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모습을 경남 남해의 다랭이 논에서 보았다. 이제 다랭이 논을 조성하기 위한 노동은 끝났다. 하지만 끼니를 잇기 위해 가파른 비탈을 계단식 논으로 일궈낸 노동의 흔적은 다랭이 논 곳곳에 피땀으로 배어 있다. 게다가 지금 계절은 겨울이어서 논을 가는 노동의 수고로움도 숨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노동을 쉬고 있는 농한기 다랭이 논의 모습은 지엄함을 잃지 않았다. 겨울철 찾은 남해의 이야기는 다랭이 논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어업과는 무관하다. 해안절벽을 끼고 있어 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마을주민들은 어업 대신 농사로 먹고 살았다. 돌을 쌓아 계단처럼 만든 명승 제15호 다랭이 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형화된 틀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논들은 그저 산의 모습과 자태에 따라 들쑥날쑥 만들어져 있다. 이곳의 농사가 기계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유다.

45도 경사의 108개 계단에 걸쳐 산재한 680여개 논들은 3평짜리 작은 것에서부터 300평짜리까지 면적도 다양하다. 문화재청은 이 지역 주민들이 노동과 땀으로 일군 다랭이 논을 2005년 명승 15호로 지정했다.

1960~70년 개발연대에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갔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돌아와 모여 살면서 조성된 독일마을은 모든 주택이 독일식으로 지어져 이국적인 풍경을 뽐내고 있다.


다랭이마을을 보고 발길을 돌린 곳은 독일마을이다. 1960~1970년 개발연대에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갔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모여 살면서 조성된 이곳은 모든 주택이 독일식으로 지어져 이국적인 풍경을 뽐내고 있다.

1973년 간호사로 파독돼 라이힐링엔이라는 도시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던 석숙자씨는 “독일에서 처음 받은 월급은 우리 돈으로 15만원, 당시 국내에서 받던 월급의 10배였다”며 “생활비 3만~4만원을 제외하고 전액을 송금했다”고 말했다. 석씨는 “김두관 전 남해군수의 친형이 파독광부였는데 그분이 독일에서 30년을 살았다”며 “그런 만큼 김 전 군수의 이해가 깊어 남해에 독일마을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30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2002년, 그는 김두관 전 남해군수가 조성한 독일마을에 처음으로 터전을 잡았다.

독일마을 한쪽에 있는 파독전시관은 7,936명의 광부와 1만1,000명의 간호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파독간호사와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독일에서 차관을 얻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이야기를 비롯한 관련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한쪽 벽면에는 1966년부터 1975년까지 파견됐던 광부들이 섭씨 30도 이상의 지열로 하루 3~4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이야기, 탄을 캐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부상을 당했던 사연,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訪獨) 이야기 등 다채로운 기록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전경. 보리암 뒤편 언덕에서만 이 같은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남해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보리암이다. 장봉·삼불암 등 기암으로 이뤄진 금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 잡은 보리암은 638년 원효대사가 초당을 짓고 수행하다 관음보살 친견 후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라 칭한 것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이 산의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소원이 이루어지면 온 산을 비단으로 둘러주겠노라’고 약속을 한 까닭에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보리암은 양양의 낙산사,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는데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구전(口傳)도 있다.

보리암에서 볼 수 있는 대장봉과 형리암.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관음보살은 영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지만 기암 위에 세워진 절의 분위기는 고즈넉하다. 보광전·산신각·범종각·요사채가 절벽을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지고 온 돌로 만들었다는 삼층석탑도 볼 수 있다. 보리암 위의 산길을 올라가면 기암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바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아름답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아스라하게 보이는 바다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금산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일출 또한 장관이어서 이 모습을 렌즈에 담기 위해 보리암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글·사진(남해)=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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