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사 사장단이 지난 2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만나 여신지원 확대를 요청한 배경은 2년 전과 다르다. 조금씩 조선업의 온기가 돌고 있고 기업들도 올해 상환해야 할 차입금을 대비해 실탄을 갖춰 놓았다. 현대중공업은 정부가 요구한 구조조정을 이행하고 자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3조5,000억원을, 삼성중공업도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실탄을 마련한다. 대우조선해양도 2017년 초 정부로부터 2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지원을 받아 버틸 여력이 남아 있다. 국내 조선업계 상황도 나아져 2017년 말 기준으로 전년보다 3.5배 많은 152척을 수주했고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도 2016년 16.6%에서 2017년 12월 기준 29.4%로 늘었다.
그럼에도 여신증액 한도와 차입금 만기 연장을 요청한 것은 이르면 올해 말부터 예상되는 대규모 수주전을 대비해 유동성을 미리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조대금의 60%가 선박 인도 시 들어오는데 수주와 인도 시점이 맞물렸을 경우 자금의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당장 앞으로 인도할 물량보다 수주할 물량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제작금융·운영비 등을 여신 지원을 통해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예상되는 차입금은 제때 상환할 예정”이라면서도 “예전 같으면 상환한 후 곧바로 다시 제작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면 어려워 건조 자금을 ‘현찰 박치기’로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당장의 재무구조 문제보다도 국내 조선사의 신용등급 등을 높이기 위해 여신한도 증액이 필요하다”며 “금융위원회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채권단은 대형 조선사들의 여신 지원 확대 요청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선 업황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늘리거나 여신 만기를 장기 연장했다가 부실화되면 재무 부담이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최근까지도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제외하면 시중은행들은 조선사의 대출 규모를 줄여왔다. 지난해 10월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의 선박금융 대출규모는 2012년 말 3조5,472억원에서 2017년 6월 말 2조3,795억원으로 32.9%나 줄어들었다. 시중은행들이 전체 선박 금융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말 23.8%에서 2017년 11.3%로 절반 이상 낮아졌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여신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며 “요청이 들어온 후에 검토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조선업을 살리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은행들이 조선업 여신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 초 조선업 경쟁력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면서도 “여신지원 확대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박형윤·서일범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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