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4조 5,747억원을 기록, 2010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처음으로 5조원 벽이 무너졌다. 당기순이익(4조5,464억원)도 20.5% 급감했다. 영업이익률은 역대 최저인 4.7%였다.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영업이익은 6,622억원으로 73.1%, 순익은 9,680억원으로 64.9%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고작 1.2%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들의 실적 악화는 빅2 부진이 원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여파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 시장이다.
합작법인인 중국과 달리 미국 실적은 영업익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양사 합쳐 14만7,380대나 쪼그라들었다. 공장 1곳을 1년에 절반가량 멈춰도 될 정도다. 현대·기아차가 올해는 레저용차량(RV) 중심으로 반전을 노리겠다고 밝혔지만 전망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미국과의 통상분쟁이 최대 변수다.
현대차는 미 앨라바마에 연산 30만대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기아차는 조지아에 30만대 규모의 공장이 있다. 이 중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비중이 현대차는 30%, 기아차는 60%나 된다. 현지에서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나 인기가 높은 투싼 등은 모두 울산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지난해 현대차의 북미 수출량은 40만1,776대로 전년 대비 5.6% 급감했고 기아차는 14% 줄었다.
만약 미국이 최근 기조처럼 한국산 철강제품을 사용한 다른 제조업 제품까지 문제 삼는다면 자동차 산업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한국 차량 물량조정 조치가 나온다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북미 시장은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가격경쟁이 치열해 세이프가드 등의 조치로 국산 차에 고율의 관세를 물린다면 가격경쟁력을 잃고 판매실적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공장이 있으니 국내 수출물량을 현지 생산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수억원을 들여 현지 라인 개선 작업을 해야 한다. 시장 수요에 제때 대응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내 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이전 생산하려면 노조를 설득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기아차가 지난 2016년부터 가동 중인 멕시코 공장에서 물량을 댈 수 있다지만 이곳 역시 트럼프가 문제 삼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소속이라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한미 FTA 개정으로 미국 차량 수입에 유리한 환경이 되면 안방인 국내 시장을 일부 내줘야 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원화 강세 흐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점도 악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올해 반등하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의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근의 통상분쟁이 국내 차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도원·조민규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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