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민 우영민(26)씨는 이날 회사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세종병원 화재를 목격하고 구조 작업을 도왔다. 우씨는 “소방관들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불을 끄면서 환자를 구하고 있었다”며 “환자들의 얼굴과 손, 환자복이 연기 때문에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설치한 사다리차를 타고 환자들이 한 명씩 아래로 내려왔고 5층(실제로는 4층)에 있던 환자들은 슬라이더를 타고 아래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우씨에 따르면 20여명의 시민들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구조 작업을 힘껏 도왔다. 그는 “저를 비롯한 주민들은 환자들이 무사히 내려오도록 슬라이더를 꼭 붙잡고 있거나 불이 옮겨붙지 않은 옆 건물 장례식장에서 이불이나 핫팩을 들고 나와 추위에 떠는 환자들에게 제공했다”고 전했다.
얇은 환자복만 걸치고 탈출한 환자들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준 시민들도 있었다. 세종병원 5층에 입원해 있다가 환자복만 입은 채 사다리차를 타고 대피한 하모(89)씨는 “내복을 안 입고 있었는데 너무 추워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며 “1층으로 내려오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지만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병원을 탈출한 환자들을 안전한 장소인 장례식장까지 대피시키기도 했다. 우씨를 비롯한 일부 젊은 시민들은 소방당국의 요청으로 사망자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직접 옮기는 일도 맡았다. 구조 작업에 참여한 한 시민은 “병원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며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병원 장례식장 후문 쪽으로 달려가 구조를 도왔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1일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도 시민들이 구조 작업에 적극 동참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이번 화재로 밀양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밀양의 인구가 11만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희생자들은 대개 동네 사람들이다. 가곡동 주민 박모(60)씨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두 분이 돌아가셨다”며 “거의 뭐 초상집 분위기인데 뭐 안타깝고 말도 못한다”라고 말했다. 주부민방위 기동대원이기도 한 박화애씨는 “세종병원 환자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민인데 감기나 골절 등으로 입원하다 참변을 당한 사람도 있는 걸로 들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화재가 난 세종병원의 일부 사망자들이 이송된 장례식장은 침통함으로 가득했다. 사망자 박모(92)씨의 빈소에는 딸과 사위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 눈물을 흘리며 침묵을 지켰다. 사위는 “오늘이 장모님 퇴원 날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모인 박씨는 폐에 물이 차서 세종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을 기다리고 있던 중 화를 당했다.
정부는 이날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 행정안전부·밀양시 등과 함께 지원 체계 마련에 나섰다. 사망자 합동분향소는 27일 밀양 문화체육관에 마련된다. 한편 경찰은 이번 화재가 1층 직원 탈의실에서 났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 “정확한 화재 지점은 정밀감식을 해봐야 안다. 탈의실 용도가 탕비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부분도 확인할 예정”이라며 “병원을 지을 때 설계도와 현장이 약간 다른데 이 역시 확인해 감식을 벌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밀양=이두형·박우인기자 mcdj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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