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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혈액투석실 설치기준도 없는 나라

이영기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신장내과 교수





혈액투석을 받는 말기 신부전(콩팥기능부전) 환자의 사망률은 매우 높다. 대한신장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우리나라 신대체요법의 현황’에 따르면 당뇨병을 동반한 투석 환자의 5년 생존율은 53.9%로 대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감염은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서 두 번째로 흔한 사망 원인이다. 콩팥 기능 저하로 면역 기능이 떨어져 있으면 중증 감염이 일어나도 발열 등의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혈액투석 과정에서 천자(속이 빈 가는 침을 찔러넣어 체액을 뽑아내는 일), 투석막, 수혈, 도관 사용 등으로 인한 감염 위험도 크다. 혈액투석은 여러 명의 환자가 4시간 이상 인공신장실에 머물며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병상 간격이 대부분 1m 정도에 불과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같은 중증 호흡기 감염병에 걸린 환자가 있을 경우 확산될 위험이 매우 높다. 주 3회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혈액투석 환자는 자가 격리 조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인공신장실 내 감염 예방과 전파 위험 차단은 매우 중요하다.

해외 각국에서는 혈액투석을 하는 인공신장실의 인력·운영·시설에 대한 설치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인증 형태로 인공신장실의 질 관리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에 따라 조직된 비영리단체인 ‘말기신부전 네트워크’가 질 관리를 위탁받아 인공신장실에 대한 허가·관리·승인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새로 설립한 인공신장실은 각 지역의 네트워크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며 네트워크는 정기적으로 인공신장실을 평가해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또 독일·싱가포르 등은 허가 형태로, 홍콩·대만 등은 보건당국과 전문가 단체가 함께 만든 인증기준으로 인공신장실의 질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기준이 없어 인공신장실의 과당 경쟁과 부실 운영으로 환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다.

인공신장실의 수익은 혈액투석 환자 수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환자 본인부담금(진료비용의 10%)을 징수하지 않아도 90%의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박리다매식 경영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의료법 시행규칙은 의원·병원·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의 종별(種別)에 따라 입원실·중환자실·수술실·응급실 등의 시설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인공신장실에 대한 규정은 없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와 건강증진재단의 연구로 ‘인공신장실 설치기준 마련을 위한 조사연구’를 했지만 후속조치는 없었다.



인공신장실은 혈액투석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해 적절한 공간을 확보하고 응급장비를 포함한 시설·장비를 갖춰야 한다. 혈액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의사 1인당 투석 환자 수 제한 등 적정 진료인력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또 투석액에 대한 국내 수질관리 기준뿐 아니라 혈액투석 환자들의 전염 예방을 위한 감염관리지침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투석 환자들은 인공신장실 설치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의사 1명이 진료하는 투석 환자 수에 대한 제한조차 없는 현실은 심히 염려스럽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전국의 인공신장실을 대상으로 혈액투석 적정성 평가를 하고 있다. 2015년 평가에서는 가감지급제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아직도 일부 인공신장실에서는 환자 유인 같은 불법 행위들이 이뤄지고 있다. 투석 환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비윤리적인 투석기관을 관리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공신장실 설치기준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

이영기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신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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