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공기업의 손발을 묶은 정부가 정작 철강 업계의 새로운 해외 수요처로 가스공사와 석유공사 등의 중동 지역 광구를 제시했다. 미국이 철강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이자 이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중동 지역은 광구 운영권을 확보하지 않은 지분 투자의 형태가 대부분이어서 한국산 철강 수입을 결정할 권한이 아직은 없다. 여기에 일부 광구는 ‘해외자원개발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매각을 검토하고 있어 정부 정책이 엇박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월 철강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중동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16일 “우리 철강제품에 대한 ‘실적(track record)’ 확보를 통해 신시장 개척을 지원하겠다”며 “중동 등에서 주로 쓰이는 중국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가스공사와 석유공사가 보유한 해외 광구를 테스트베드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자원개발 공기업이 보유한 광구에서부터 한국산 강관을 사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중동 지역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두 공사가 보유한 중동 광구에서 한국산 철강에 대한 수요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가스공사의 이라크 주바이르 유전의 경우 운영권자는 이탈리아의 ‘에니’, 이라크 바드라 유전의 운영권자는 러시아의 ‘가스프롬’사다. 운영권이 외국 기업에 있다 보니 값싼 중국산 철강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한 한국산 철강이 입찰에서 선택받을 가능성은 낮다. 두 공사 관계자는 “운영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한국산 철강 수입을 강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스공사가 운영권을 가진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은 해외자원개발혁신 TF에서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석유공사의 중동 광구도 사정이 비슷하다. 석유공사가 지분을 보유한 예멘 70광구의 운영권자는 프랑스 ‘토탈’ 사다. 2008년 8월 첫 탐사공을 시추했지만 2015년 4월 예멘 내전으로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한 후 탐사작업이 중단됐다.
자원개발 업계 관계자는 “중동 광구에서 철강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철강의 새로운 수요처로 중동 광구를 제안한 것은 아이디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중동 외 지역에도 광구가 있어 관련기관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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