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로벌 톱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비공개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에 투자하고 싶지만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우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순이자마진(NIM)이 상승하면 은행 수익으로 전환돼야 하는데 과연 정부가 그렇게 놓아주겠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상승기에도 대출 규제로 은행업이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외국인투자가들이 가장 예의주시해온 것이 정부 리스크다. 투자자들이 기업설명회(IR)에서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단골 메뉴가 최저임금 인상 여파였을 정도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일자리와 영세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주고 금융사로 부실이 전이되는지에 북한 리스크보다 더 관심이 많았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내걸면서 금융 산업이 복지정책의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다.
이렇게 불확실한 금융산업의 현주소는 주가가 보여준다. 금융권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이어가도 대부분의 금융사 주가는 오히려 지난해 말 대비 하락했다. 최근 한 달 CEO와 임원들이 팔을 걷고 나서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을 해도 시큰둥할 따름이다. 향후 실적 호조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 시각이 강한 것이다. 기업 스스로도 1조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면서 표정관리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담보대출 위주의 구태나 꺾기, 금리가 올라갈 때 대출금리만 재빠르게 인상하고 예금금리는 뒷북으로 올리는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올 1·4분기에도 이자이익이 10% 이상 늘어나면서 4대 시중은행의 이자이익만 5조3,000억원에 달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로 수익을 늘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채용비리 이슈는 아직도 금융권을 휩쓸고 있다. 당시 관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털고 가야 하는 숙제다. 결국 금융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만 소비자 보호에만 기울어진 금융개혁은 필히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최고 금리를 낮추자 저축은행 소액 신용대출이 줄어들어 서민들의 대출 창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장기소액연체자 채무 탕감을 하니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다. 버텨보자는 심리에 빚을 감면받는 컨설팅까지 있다고 하니 시장경제 논리에 배치되는 개혁이 성실한 금융 거래자 보호를 넘어서 버렸다.
금융 갑질은 타파하되 균형 잡힌 금융혁신은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의 금융개혁이 기울어져 있다는 시각은 비단 금융권 내부에서만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금융 자체가 적폐는 아니지 않은가. 금융산업 발전까지 꾀할 수 있는 개혁이라야 외국인투자가들이 등 돌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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