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연임을 포기한 김용환 NH농협금융회장은 사퇴의 변을 통해 금융사 CEO들의 적정 임기에 대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김 회장은 장기 발전 계획에 따른 경영을 위해 CEO의 임기가 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반면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사 CEO들이 손쉽게 연임해 장기 집권하는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짧아도 문제, 길어도 문제인 금융사 CEO 임기에 대해 금융증권부 정훈규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Q. 정기자, 우선 김용환 농협금융회장이 용퇴를 결정하면서 임기 문제를 거론한 배경은 뭡니까?
[기자]
네, 우선 농협금융은 회장 임기가 다른 금융지주들에 비해 짧습니다. 최초 선임 때 2년이고, 연임할 때부터는 1년씩인데요.
통상 다른 금융지주들이 3년씩인 것을 고려하면 연임을 해야 다른 지주 회장의 한 차례 임기와 같아지는 겁니다.
김 회장의 경우 농협금융지주 출범 이후 최초로 연임한 바 있고, 이번에 3연임을 포기한 것인데요.
김 회장은 “농협금융에서 회장을 제일 오래 했다지만 다른 금융지주로 치면 단임 아니냐”며 “더 하려 해도 1년이니까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경영자가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농협도 다른 금융지주처럼 긴 임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는데요.
특히 금융은 전문성이 필요한데, 짧은 임기를 연임으로 이어가다 보니 금융사 CEO가 단기 업적에 치중해 일관성이 없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Q. 김 회장 말처럼 임기가 짧으면 경영자들이 단기업적 쌓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데요. 반대로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집권을 문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김정태 회장이 최근 3연임에 성공하면서 총 9년의 임기를 확보했고요. 김승유 전 회장도 3연임을 한 바 있습니다.
또 지난 2014년 첫 취임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하면서 임기가 3년 더 늘었습니다.
신한금융의 경우 조용병 회장이 새로 부임한 지는 이제 막 1년가량 됐는데요.
이전에 한동우 전 회장 임기가 6년, 또 라응찬 전 회장의 경우 무려 4연임을 한 바 있습니다.
당국은 현직 CEO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스스로 연임하는데 사용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요.
매번 연임 때 임원추천위원회나 회장추천위원회의 선임 절차를 거치지만 현직 CEO가 후보로 있는 경우 나머지 후보는 사실상 들러리밖에 안된단 얘깁니다.
이렇게 1인 지배체제가 굳어진 금융사는 오너 회사가 아님에도 오너리스크 비슷한 위험을 겪을 수 있고, 또 신한 사태와 같은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겁니다.
[앵커]
Q. 결국 길어도 문제, 짧아도 문제란 얘긴데요. CEO 임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고 볼만한 기간이 있나요?
[기자]
네, 업계와 학계 등에 금융사 CEO들의 적정 임기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는데요.
적정 임기라는 것이 정답이 있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김용환 회장의 3년은 짧고, 김정태 회장의 9년이 길다는 데는 이견을 듣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6년 정도, 다시 말해 3년 임기로 재임 정도가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짧거나 긴 임기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재임까지만 허용되도록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김용환 회장처럼 자진해서 후배에 길을 터주는 사례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임기를 제도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다며 난색을 표했는데요.
큰 오점이 없으면 재임 정도까지는 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과가 뛰어나다면 경영을 더 오래 하는 것도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임기가 길고 짧은 것 자체로 CEO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필요가 없단 얘깁니다.
[앵커]
Q. 방금 나온 얘기대로 임기 자체가 길고 짧은 게 문제의 본질은 아닌 거 같은데요. 당국의 지적처럼 셀프 연임을 막기 위한 공정한 선임 절차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기자]
네, 현직 CEO들이 연임할 때 다른 후보자들의 도전을 받고, 재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그러나 절차가 공정하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현직 프리미엄을 이겨낼 후보자가 나타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과거 한 시중은행의 행장 선임 과정에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요.
해당 은행은 현직 행장이 연임에 도전 중이었고, 내부 임원을 비롯한 여러 후보자가 있었습니다.
차기 행장 최종 인터뷰를 앞두고는 유력 후보군이 좁혀지면서 현직 행장과 새 인물의 경쟁구도가 형성됐는데요.
이때 해당 은행 이사회 멤버는 결과가 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경쟁이 되질 않는다”고 귀뜸해줬습니다.
이어 “은행장 자리는 그냥 견뎌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면서 “시중은행을 2~3년 이끈 사람은 이미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나머지 후보와 비교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행장은 연임에 성공했는데요.
당국에서 절차의 투명성을 문제 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현직 CEO에게 큰 실책이 없다면 임추위나 회추위 등에서 연임이 선택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단 얘깁니다.
/정훈규기자 cargo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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