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식 독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 책이 나에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읽고 나서 어떤 변화를 줬는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서울대는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워온 큰 사람을 기다립니다.”
서울대 수시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서의 4번 항목은 ‘독서’다. 고등학교 재학 기간 또는 최근 3년간 읽었던 책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3권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적도록 한다. 앞선 3개 항목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공통문항으로 다른 대학 자기소개서 문항과 큰 차이가 없지만 4번은 서울대만의 고유항목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문항이기도 하다.
10일 서울대 웹진 아로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수시모집 지원자는 1만8,871명이었고 이 가운데 1만4,127명이 자기소개서를 냈다. 이들이 4번 항목에 기재한 책 수는 총 4만2,219권이다. 중복기재를 빼면 총 1만4,204권이다. 각 지원자가 제시한 책 가운데 겹치지 않은, 즉 단 1명만 기재한 책은 9,467권이다.
지원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고르는 책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재작년 지원자들과 지난해 지원자들이 많이 택한 상위 20권의 책 가운데 18권이 그대로다. 심지어 1~4위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명단에서 바뀐 책은 2권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대신해 클라우드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을 대신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올랐다. 입시를 위한 책 선택인 만큼 4차 산업혁명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대 관계자는 “입시에 유리한 책은 없다”며 “지원자의 온전한 문제의식과 이를 위한 탐구활동의 결과물을 제시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들은 이를 감안해도 3권의 책을 고르기 위한 일종의 선택 전략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진로 연계성 △폭넓은 문화적 소양 △가치관 제시 등이 주요 포인트다. 서울대 자기소개서의 경우 지원동기나 진로계획을 따로 설명할 수 있는 별도 문항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 책이나 저자의 유명세보다 지원자 개별의 독특한 관점을 중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복이 많은 책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입시만을 위해 독서를 뒤늦게 준비할 경우 이미 약점을 안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평소 독서습관을 들여야 한다. 특히 고3이 되면 별도의 시간을 들여 책을 읽기 어려우므로 최소 고1~2 때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1학년 때는 인문·자연 등 계열 구분 없이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하게 읽고 2학년 때는 진로와 연결된 기초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고3 시기에는 전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심화적인 독서활동이 필요하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어떤 책을 얼마만큼 읽었는지보다 그 책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하다”며 “전공, 진로 관련 독서일 경우 학습 계기와 지식을 확장하는 심화 과정, 연관된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는 등의 노력이 동반된다면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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