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만이 아니다. 국세청은 현미경식 세무조사를 강조했다. 조사대상 기업의 정상거래까지 전방위로 조사(저인망식)하는 게 아니라 사주 일가의 편법상속·증여에 집중해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대상자도 ‘핀셋 선정’했다. 대기업과 사주일가의 불법을 철저히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국세청이 대기업·대자산가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외부에 알린 것은 2013년 이후 5년 만이다. 그만큼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역외탈세를 두고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대재산가는 국내외에 재산이 분산돼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LG그룹 오너 일가가 100억원대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고 검찰에 고발한 것이나 지난해 한진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국세청이 공개한 대기업·대재산가의 세금탈루 유형은 다양하다. A사는 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투자금 명목으로 자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 돈은 엉뚱하게 사주 부인의 고급승용차와 콘도 구입에 쓰였다. 국세청은 A사에 법인세 수십억원을 추징했다. 친인척 및 임직원, 외국계 펀드 명의의 차명재산(주식·예금·부동산)을 통한 변칙 상속·증여도 있었다. B법인 사주는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회사와 전직 임직원 등에게 분산돼 있던 명의신탁 주식을 자녀에게 저가로 양도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C사는 해외 현지법인의 불균등 증자과정에서 사주의 자녀에게는 액면가액으로 주식을 배분해 싼가격에 살 수 있게 했다.
법인돈을 내돈처럼 쓴 경우도 있다. D사는 사주 일가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법인카드 대금과 상품권·사치품 구매에 들어간 돈을 회사가 대신 내줬다. E사는 사주 자택의 경비인력 인건비를 법인이 대납한 것도 모자라 회사에 근무하지도 않는 사주 모친에게 급여를 부당 지급했다. 이 회사는 법인세 수백억원을 추징당했다. 외주가공업체에 외주가공비를 과다 지급한 뒤 차액으로 비자금을 만든 곳도 있었다. 건설업체 F사는 사주 배우자 명의로 건축자재 도매업체를 차리고 자재 매입과정에서 끼워넣기 거래와 매입대금 과다지급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제공했다.
지능적 수법도 많다. 사주가 운영하는 법인과 지인이 운영하는 법인의 주식을 상호 교차 취득한 후 이를 상대방 사주 자녀에게 서로 저가에 양도하는 방법으로 변칙 증여를 한 기업도 있다.
앞으로 대기업과 사주일가에 대한 세정당국의 감시는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국세청은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 및 차명주식 통합분석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기업·대재산가의 신종 탈루 유형을 발굴할 계획이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상시 정보교환 채널을 구축할 것”이라며 “기업·대재산가의 변칙적 탈세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