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 아니라 메모리 편중 강국에 불과합니다.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고 비메모리를 육성하려면 설계·제조·후공정·소재·장비 업계의 경쟁력을 모두 높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전문가들은 반도체 위기 타개의 해법으로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정부·기업·학계 등 관련 주체들이 똘똘 뭉쳐 중국 굴기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전 분야별로 목표를 세우고 정부와 기업이 협업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인수합병(M&A) 시 소득세를 줄여주는 등 파격적인 혜택도 제공한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기업만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우리 사정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우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팹리스(반도체 설계)의 공동 육성이 필수라는 의견이다. 예컨대 정부 지원으로 유망한 팹리스를 발굴할 경우 이 팹리스가 설계한 제품을 삼성전자 등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함께 커갈 수 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경쟁 우위를 갖고 생존한 국내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확실한 수요처를 찾아줘야 한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 등 국내 파운드리 기업이 있고 비메모리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지는 등 과거보다 여건이 좋아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과거보다 높아진 반도체 진입장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스타트업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설계업체가 1차 시제품을 만드는 데만도 적게는 20억~30억원, 많게는 100억원까지 들 정도로 제조비용이 높아졌다. 송 교수는 “신규 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굉장히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면 지원받기 힘들어 다양한 시도와 창업이 장려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는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주체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부처 차원의 반도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민관펀드의 규모와 기능을 확대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반도체 제조사, 소재·장비 업체, 투자자가 모두 참여해 공동 목표를 세우고 M&A에도 적극 뛰어드는 모델이 구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구용서 교수는 “중국은 반도체 기업 M&A, 인재 육성, 해외 인력 확보 등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는데 우리는 반도체 연구개발 지원이 상당히 부족해 학생들의 석박사 지원이 급감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며 “4~5년 이후 반도체 성장동력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교우위를 가진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초격차를 유지해 비메모리가 성장할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D램과 낸드의 기술개발 속도를 높이면 원가가 낮아져 추격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D램은 수많은 셀 중 하나라도 불량이 나면 오작동이 되고 결국 전체 시스템이 다운될 정도이므로 품질관리가 중요하다”면서 “기술적 난도가 높아 아직 국내 기업이 기술을 고도화할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중국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제작하려면 D램의 경우 아무리 빨라야 5년 후에나 가능하고 낸드의 본격 양산 역시 2020년부터 이뤄질 것”이라며 “(중국과) 차이가 날 때 더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희철·조양준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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