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비건(Vegan)’ 화장품으로 승부를 걸겠습니다. 비건 화장품의 성장률이 일반 화장품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하나(29·사진) 뷰티긱스 대표가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미국 뷰티 시장의 성장률이 연평균 4%인데 비건 뷰티의 성장률은 7%에 달하고 있고 오는 2025년께 미국 뷰티 시장의 절반은 비건 화장품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로 현지인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뷰티긱스는 비건 화장품 생산을 내걸고 올해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 우유·달걀·실크·가죽도 쓰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의미한다. 멜릭서는 연금술에서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고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묘약이라는 의미를 가진 ‘엘릭시르(elixir)’에서 따왔다. 이 대표는 “나만의 묘약(my elixir)일 수도 있고 마법을 뜻하는 매직(magic)의 의미도 담고 있다”며 “1차적으로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만큼 현지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로 정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앞다퉈 진출하는 중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미박스에서 해외사업본부장을 지낸 그는 “K뷰티의 인기는 글로벌 시장 어느 곳에서나 뜨겁지만 중국 시장의 경우 메이크업 제품을 선호하고 미국 시장에서는 스킨케어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미국에서 한국 스킨케어는 ‘10스텝(10단계에 이를 정도로 시장이 세분화해 있다는 표현)’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미박스는 지난 2012년 문을 연 화장품 전문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초창기에는 화장품을 매달 배달해주는 ‘정기배송 서비스’로 20~30대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화장품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직접 경험한 이 대표는 한국 스킨케어에 대한 높은 신뢰도에 더해 새롭게 뜨는 비건 트렌드로 승부수를 던지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 대표는 특히 색조 화장품의 경우 글로벌 제조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목했다. 이 대표는 “색조는 각양각색의 피부색과 피부 톤에 맞게 컬러의 변형(variation)이 중요한데 국내 뷰티 기술력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국내 제조사의 기술이 아시안 핏에 맞춰져 있는 반면 서구 시장에서는 다양한 피부 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난점”이라고 지목했다.
비건 화장품을 선택한 이유로는 화장품 업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동물실험과 기존 화장품 성분의 문제를 꼽았다. 특히 글로벌 뷰티 유통 브랜드 미미박스에서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숱한 화장품을 사용했던 이 대표 자신이 피부 트러블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도 비건 화장품 선택에 한몫했다.
그는 “화장품은 인체 안전성을 점검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많이 하는데 주로 토끼를 대상으로 한다”며 “토끼 눈에 화장품의 기초 성분이 되는 화학약품을 계속 주입하는 방식인데 실험 자체가 잔인해 동물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라벤 같은 화학 방부제도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화장품 성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장품의 유통기간이 5년에 달하는 만큼 엄청난 양의 화학 방부제를 첨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멜릭서는 동물 친화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얻는 동물성 원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말에게서 얻는 마유크림이나 달팽이크림,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스쿠알렌 등도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기에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성분으로 대체해 제품화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뷰티긱스는 최근 페이스오일과 비타민C세럼을 출시했다. 페이스오일은 식물에서 추출한 스쿠알렌을 베이스로 한다. 이 대표는 “기존에 스쿠알렌이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안티에이징 성분으로 알려졌는데 올리브 등 식물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면서 “동물성 스쿠알렌보다 안정성이 높고 효능도 좋은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페이스오일은 식물성 스쿠알렌을 92% 함유하고 있다. 프랑스 에코서트 인증을 받은 원료를 사용했다. 비타민C세럼 역시 식물성 성분으로 녹차수·비타민·오렌지수와 함께 미백 인증 성분인 나이아신아마이드를 넣었다. 이후 페이스마스크·립밤·클렌저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혀나간다는 전략이다. 천연 성분을 사용하는 만큼 개봉 후 사용기한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용량을 50㎖ 이하로 작게 만들어 자주 교체해 신선한 상태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우리에게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떻게 추출돼 우리에게 왔는지 알 권리가 있다”면서 “멜릭서는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깨끗하면서도 윤리적인 원료만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뷰티긱스는 신제품을 아마존을 통해 선보이는 한편 현지의 2030고객 공략을 위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뷰티 인플루언서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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