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함께 최초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등정하면서 중국과의 ‘이름 전쟁’에서 우리가 일단은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날 남북 정상의 백두산 등정에 대해서 영어권 외신들은 일제히 “두 정상이 백두산에 올랐다(Climbed Mount Paektu)”는 기사를 타전했다. 기사 가운데서는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Mount Changbai)이라고 한다’는 내용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제목을 포함해 ‘백두산’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한국발 기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쓰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백두산이 줄곧 ‘장백산’으로 불린 것에 비하면 적지 않은 변화인 셈이다.
지금까지 백두산 관련 외신 기사는 대개 중국발로 나왔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롯해 백두산 인근 지역 개발에 따라 외신에도 중국식 표현인 ‘장백산(발음은 창바이산)’으로 사용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의 남북 정상의 백두산 깜작 등정이 ‘이름 전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중국 일부 매체마저도 ‘백두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백두산은 동북아시아의 최고봉이자 그 자태의 영험함에 따라 역사적으로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山海經)’에서는 ‘불함산(不咸山)’으로 나온다. 백두산(白頭山)이라는 말은 959년(광종 10년) 처음으로 고려사에 나타난다. 삼국유사에는 ‘태백산’으로 돼 있다. 이후 국내에서는 여러 이름이 혼재돼 사용되다가 근대에 이 산이 민족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으면서 ‘백두산’으로 정착했다.
이에 비해 원래 중국인은 백두산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만주족들이 자신들의 민족 발원지로 이 산을 자리매김하면서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xanggiyan alin)’이라고 불렀는데 뜻은 ‘크고 흰 산’이다.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한 이후 만주어 이름들을 한자로 옮기면서 ‘장백산(長白山)’이 돼 버린 것이다. 덧붙여 백두산 정상의 호수는 중국이나 한국 모두 하늘연못이라는 뜻의 ‘천지(天池)’로 부른다.
현재 백두산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백두산 천지를 기준으로 54.5%는 북한령으로, 나머지 45.5%는 중국령으로 분할돼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중국령 백두산 지역을 방문해 그쪽 상황을 잘 알려져 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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