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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제조한국, 미래지도 다시 그려라]389조 투자 발표했지만...기업들 '벙어리 냉가슴'

지배구조 개선·반기업 정서 부담

사정기관 조사도 투자 주춤에 한몫





‘389조원.’ 최근 삼성·현대·SK(034730) 등 7대 그룹이 밝힌 향후 3~5년간 미래 사업 투자 규모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AI), 바이오, 자율주행 등 4차 산업 관련 투자만 100조원이 넘는다. 삼성의 경우 3년간 25조원을 AI, 5세대(5G)통신,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산업에 투입하겠다고 명시했다. SK 역시 50조원을 반도체 소재, 에너지, 헬스케어 등 5대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한 해 연구개발(R&D) 예산(2019년 20조4,000억원)을 감안하면 얼마나 투자 규모가 큰지 알 수 있다. 이들 기업이 한국 산업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투자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각종 규제로 인해 투자 대비 효용을 기대할 수 없는가 하면 반기업 정서나 지배구조 개선 부담 등의 이유로 잔뜩 움츠려 있다. 일각에서 떠밀리기식 투자로는 변화하는 4차 산업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투자 계획을 내놓기는 했지만 지배구조 개편 요구 등 각종 정부 리스크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국정감사까지 겹친 요즘 같은 때는 애로사항을 말하는 것도 금물”이라고 토로했다.

삼성의 경우 일찌감치 ‘포스트 반도체’로 육성 중인 바이오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1년 넘게 끌어온 분식회계 논란은 재감리 결정으로 여전히 안갯속이다. 바이오 업계가 고대하고 있는 원료 반입기간 단축이나 복제약 가격책정 규제 완화도 요원해 보인다. 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담 때 삼성 측에서 ‘바이오 규제 완화’를 요청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태다.



현대차(005380)의 미래 사업도 쉽지 않다. 해외에서 동남아시아의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인 그랩 등과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에는 국내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택시 업계의 반발로 사업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자율주행의 핵심인 데이터 구축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사진이나 위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민관 차원의 시스템이 없는 반면 개인정보 관련 규제는 완화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해체로 융복합 먹거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현대차도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 아니냐”며 “대표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LG(003550)조차 최근 검찰 압수수색의 대상이 됐다. 4세대 경영자인 구광모 회장 시대를 열며 인사 및 조직개편을 앞둔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LG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서브원과 판토스의 지분매각에도 나섰다. 구본준 LG 부회장의 계열분리 이슈도 남아 있다. 투자 외적인 부분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이다. 다만 구 회장은 최근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하며 경영 행보를 본격화했다. AI·로봇 등에 대한 투자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SK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 상향 대상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렸다. 만약 공정위원회가 기존 지주사까지 모두 지분율을 30%(기존 20%)까지 높이라고 했다면 SK는 7조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SK는 올해 들어서만 6조원 이상을 기업 인수합병(M&A)에 쏟아부으며 성장동력을 확보 중이다. 보안 업체 ADT캡스를 비롯해 △미국 의약품 생산회사 암팩 △북미 셰일가스 운송·가공 사업자 브라조스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 마산그룹 등을 인수하거나 지분투자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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