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부에서는 ‘민노총이 과다한 촛불청구서를 들이밀며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 역시 노동계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지만 노동자 전체가 아닌 일부 단체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피력해왔다. 여기에 최근 일자리 상황이 더욱 악화하자 노동 현안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청와대 일자리수석실의 입장이 이번 결정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29일 “경사노위 출범은 전적으로 경사노위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 출범은 사실상 청와대가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경사노위를 출범시켜 놓고 논의를 이어가면서 민주노총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노동계에서는 청와대가 노동 정책에 불만을 표시해온 민주노총의 반발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올해 5월 노동계 반발을 무릅쓰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8월 내년 최저임금을 노동계의 기대에 못 미친 시간당 8,350원(올해 대비 10.9% 인상)으로 결정했고 정부도 2020년 최저 시급 1만원 달성이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 없이 경사노위를 출범하겠다는 것은 민주노총 내부의 강경 반대파 목소리에 개의치 않겠다는 정부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또한 노사정 대화를 최대한 빨리 재개하라는 재계와 한국노총의 뜻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기로 한 지 1년이 지나 여건이 성숙한 만큼 민주노총이 없어도 경사노위를 올해 안에 출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성현 경사노위원장도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민주노총이 내년 1월에는 온다고 하지만 그때 가능할지 여부도 알 수 없다”며 “이번에 무산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의 가동이 이제는 불가피하다는 많은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대 노총의 하나인 민주노총이 빠진 채 경사노위가 출범하면 반쪽짜리가 되면서 각종 현안 추진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와 산업계에서는 조선·자동차 같은 불황 업종에서 논의되고 있는 구조조정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광주광역시는 업계 절반 연봉(약 3,000만원)으로 근로자를 고용해 완성차를 만드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노사 대립이 심각해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조선·자동차 같은 업종은 노사 관계 혁신이 시급한데 이들 업계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경사노위가 개혁 의제를 제시해도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반대에 가로막혀 공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윤홍우·이종혁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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