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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문화역서울284] 굴곡진 근현대사의 산 증인...문화플랫폼이 되다

서울역 전경.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문화역서울284(오른쪽·옛 서울역)와 서울역 민자역사(왼쪽 현 서울역)가 한곳에 자리 잡고 있다. /권욱기자




문화역서울284(당시 경성역)의 건립 당시 모습. 1920년대에는 ‘경성역’을 비롯해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근대사회는 철도의 출발과 함께 열렸다. 기차가 시커멓고 거대한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는 새로운 기술 진보를 의미했으며 이전의 세계와는 확연하게 다른 곳으로 내달았다. 에릭 홉스봄이라는 한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어떠한 기술 혁신도 철도만큼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과거의 신과 왕들은 현재의 사업가와 증기기관 앞에서 무력한 존재였다.”

지난 1899년 9월18일 조선에서 처음으로 기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당시 한 기록에는 ‘움직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기차는 충격에 가까웠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충격은 일상이 됐고 일상으로 스며든 철도는 사람들의 생활·문화·생각을 바꿨다. 도시의 구조도, 경관도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1925년 서울역(현 문화역서울284)이 들어섰다. 그리고 서울역은 100여년 가깝게 흐른 현재까지 남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록하는 시대의 산증인으로, 우리의 일상사를 응축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의 손길이 깊숙이 닿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옛 서울역이 역사(驛舍)로서 기능을 잃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 2층 복원실. 이 공간은 당시 이발소가 들어선 곳이었으며 과거 배수관이 설치됐던 흔적이 남아 있다. /권욱기자


이발소였던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 2층 복원실의 과거 모습.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식민의 아픔과 근대화의 통로

서양건축양식 대거 녹인 변화의 상징

日제국의 대륙 침략·약탈 발판되기도



서울역의 출발은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철도의 문이 열리면서 서울역의 전신인 ‘남대문역’이 생겼다. 현 서울역과 염천교 중간 정도 위치에 크지 않은 목조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전국의 철도망이 넓어지고 운송 물량이 늘어나면서 보다 큰 역사 건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경성’이라는 상징성도 고려됐을 것이다. 남대문역을 대체할 ‘경성역(현 문화역서울284)’이 태어나게 된 계기다. 이렇게 지어진 경성역은 일종의 ‘스펙터클’과 같았다. 경성역은 동양에서 일본 도쿄역 다음 가는 큰 규모로 웅장함을 자랑했고 서양 건축 양식들이 대거 녹아든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성역이 완공되는 1920년 전후는 경성에 근대의 형상을 한 건물들이 대거 들어서는 시점이었다. 경성역을 비롯해 경성부청(현 서울도서관), 조선총독부(1995년 8월15일 철거) 등 조선에서 보기 힘든 형식의 건물들이 서울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도시 형상을 갖추게 된 것이다.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발전상을 대중에게 과시해 일제 지배의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목적이었다. 이 중 경성역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곳을 거쳐 북쪽으로는 군수 물자가, 남쪽으로는 수탈된 곡식이 옮겨졌다. 경성역을 보면서 식민지 아픔을 떠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시 사람들의 경성의 변화를 지켜보는 감정은 어땠을까. 소설가 박태원은 식민지 경성의 암울함을 느끼면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이렇게 썼다.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중략)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그들의 누구에서도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 ‘그릴’의 과거 모습.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 2층에 있는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 ‘그릴’.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저작권 노경 작가)


■새로운 생활상을 담다

국내 첫 경양식당·대형벽시계 ‘파발마’

‘모던보이·모던걸’ 붐비던 핫플레이스





1920년대 경성에는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이전과 다른 생활 양식도 등장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저항정신이 퍼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양 문물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소비문화가 퍼져나가는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경성역은 외국에서 유행하는 화장품·의상 등의 물품이 들어오고 소비되는 시작점에 위치했다. ‘모던보이’ ‘모던걸’들에게 경성역은 일종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시인 노천명은 이를 두고 ‘박가분(한국 화장품)을 한 조각 가지고도 치장을 잘 내던 새댁들은 이 철마가 경성역에 실어다 풀어놓은 불란서제의 박래품 쓰는 법을 배워 오늘은 코티(분)니 폼피안(화장품 이름)으로 메익엎(make-up)을 하게 됐다(박천홍씨의 ‘경성역 잡감’ 중)’고 기억한다.

음식문화 역시 바뀌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를 보여주는 곳이 서울역 2층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당 ‘그릴’이다. 그릴은 2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고 화려한 샹들리에, 은그릇과 은촛대 등으로 장식됐다. 음식 운반을 위해 리프트도 설치됐다.

철도는 시간관념도 바꿔놓았다. 일제가 표준시를 도쿄 기준으로 맞추고 시간관념을 주입하려 했지만 대중의 일상에서는 잘 먹혀들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에 움직이는 철도는 대중에게 시간관념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물이 경성역에 걸린 대형 벽시계 ‘파발마’다. 파발마는 전국의 철길을 잇는 기준점이었으며 시계가 귀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일종의 표준시계와 같았다. 이상이 쓴 소설 ‘날개’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나는 날마다 여기(경성역) 와서 시간을 보내니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지난 1968년 추석 연휴에 고향으로 향하는 인파들이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에 몰려 있다.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국가기록원 자료)


■서민의 애환 응축된 공간

청춘들 성공의 꿈 좇아 서울로 서울로…

산업화시대 ‘이촌향도’의 눈물 맺힌 곳



해방 이후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뀐다. 이에 과거 군수 물자와 병력을 실어 나르던 철도는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이런 행렬의 정점은 아마도 1960~1970년 산업화 시절이었다. 서울에 올라가면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던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울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올라온 이들은 때로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했지만 산업화를 일궈낸 역군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때로는 서울에서 겪은 실패로 고향에 다시 향하는 눈물 젖은 곳이기도 했다.

철도 이외에는 장거리 이동 수단이 없던 시절, 고향이나 지방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 역시 서울역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고향 가는 기차표를 사려고 밤새워 줄을 서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각양각색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역이 서민의 애환이 담긴 공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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