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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임불삼년' 무게를 견뎌라

6시 출근 '월화수목금금금' 다반사인데

성과 미흡 땐 '아웃' 당해

주52시간 도입에 부하 퇴근 후 나홀로 근무도

'상향 평가 도입' 바뀐 직장 문화도 스트레스

"후배한테 잘 보여야…직원 생일·결혼 챙겨야"

10년 전 보다 대우 나빠져…승진 기피 하기도





#3년 차 대기업 임원인 변형석(가명)씨는 요즘 잠을 못 잔다. 12월 초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는데 계약 연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회사 인사팀으로 추정되는 번호가 휴대폰 수신 창에 뜨면 가슴이 서늘하다. 대표 비서실에서 직접 통보하는 계약 연장과 달리 해고 통보는 회사 인사팀에서 유선전화나 문자로 간단히 알리고 끝난다. 변씨는 “예전 선배들이 인사 시즌에 인사팀 전화번호가 휴대폰 창에 뜨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말이 요즘 이해가 간다”며 “임원 승진을 앞둔 뛰어난 후배가 있거나 외부 요인 등으로 실적이 안 좋다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한 달 동안 수명이 몇 년은 단축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직장인의 별’로 불리는 임원 자리지만 무게를 견디기는 하늘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그리스 신화 속 아틀라스만큼이나 버겁다.

임원은 계약직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된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첫 임원 승진 후 암묵적으로 2~3년가량 임기를 보장해주지만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거나 성과가 미흡할 경우 가차 없이 ‘아웃’이다. 직원들이야 노조에 기대본다고 하지만 임원은 비빌 언덕도 없다.

임원 1년 차들은 대부분 업무강도에 혀를 내두른다. 한 정유회사는 임원들이 새벽6시에 출근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처럼 돼 있으며 한 대기업 계열 정보기술(IT) 업체는 토요일 출근이 필수다. 게다가 주말에 골프 약속 등을 챙기다 보면 ‘월화수목금금금’이 다반사다. 중견기업 임원 A씨는 “밖에서 보기엔 자동차, 임원실, 무제한 법인카드 등이 로망일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지원인 만큼 그만큼 일할 시간을 늘려주는 셈”이라며 “그만큼 더 큰돈을 벌고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압박이 심하다”고 밝혔다.

바뀐 직장 문화는 임원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다. ‘나 때는 1년에 364일을 일했다’는 말을 잘못 꺼내면 꼰대 취급을 받는다. 상향 평가에서 점수가 깎이는 수모도 각오해야 된다. 후배들과 저녁에 소주 한잔 하며 시름이나마 털어놓으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한 대기업 전무 B씨는 “임원은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치 일을 미리 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면서 “평가 기준으로 매니징이 중요한 만큼 부하직원과의 갈등은 바로 해고 사유”라고 말했다. B 전무의 핸드폰 알림에는 집안 대소사가 아닌 직원 생일·결혼 등이 기재돼 있다.



휴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한 유통업체 부사장은 “임원은 노동법이나 노조가 지켜주지 않는 계약직인 만큼 성과를 못 내면 바로 아웃이기 때문에 휴가에 대한 전결권이 있어도 사실상 가기 힘들다”며 “임원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책임을 져야 할 때, 사장이 찾을 때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언제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 도입은 올 들어 임원들이 당장 맞닥뜨린 또 다른 산이다. 대부분 대기업은 주 45시간 내외로만 근무하도록 하다 보니 임원이 몇몇 필수인력만 빼놓고 직접 밤늦게까지 끙끙거리며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 52시간을 넘어서 일하면 불법인데다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워라밸’은 남의 일이다.

임원 3~5년이면 상담역·고문 등의 직책이 주어지며 퇴직 후 보장됐던 생활도 옛날 일이다. 예전에는 대기업에서 중견기업,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긴 후 직장생활을 마치는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본인의 장기와 인맥을 살려서 창업을 하거나 치킨집과 같은 프랜차이즈 장사를 알아보는 이들도 많다.

10여년 전 선배들과 비교해 임원에 대한 대우도 안 좋아졌다. 예전에는 임원이 되면 회사 내 별도 사무공간에 비서·자동차·기사 등이 딸려 나왔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예전 얘기다. 사무공간은 공유 오피스 도입 등으로 크게 줄었으며 몇몇 대기업은 부서 사정에 따라 임원도 일반 직원처럼 평탁에서 근무한다. 임원에게 각 한 대씩 제공되던 업무용 차량 또한 총무팀에 예약한 후 이용 가능한 ‘카셰어링’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비서의 경우 상무급에게는 아예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상무 2명당 비서 1명을 배정하는 식이다. 운전기사의 경우 전무급 이상이 아니면 꿈꾸기 힘들며 몇몇 기업은 전무급도 운전기사가 아닌 대리기사 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수익이 정체돼 희망퇴직까지 단행하고 있는 금융권에서는 임원에 대한 대우가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드라마에 나오는, 소파 있고 응접 가능한 사무실은 말 그대로 드라마일 뿐이고 전무가 된 후에 별도 사무실이라도 얻으면 감지덕지”라며 “임원이 비즈니스석을 타고 출장 가는 것은 옛말이며 이제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녀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같이 임원에 대한 혜택은 줄어든 반면 업무 강도는 높아져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사원들은 임원 되기를 아예 기피한다. 필수 승진 코스로 꼽히는 전략팀이나 지주사 근무 등도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직원이 늘어나는 등 임원 자리를 ‘독이 든 성배’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임원만 되면 100가지의 혜택이 생긴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혜택이 손에 꼽을 정도”라며 “가뜩이나 임원직 수행에 따른 스트레스가 늘어나는데 이같이 혜택을 줄이면 임원이 되기 위한 동기가 약해져 회사에 좋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양철민·이재유·박경훈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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