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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고가 항암제 둘러싼 논란들

이대호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지난 10~20년 동안 새롭게 개발된 분자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는 암치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약값이 매우 비싸 많은 사회경제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핵심 쟁점은 네 가지다.

첫째, 효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진료 현장에서 항암제를 사용할 때 생존기간을 얼마나 늘려주는가, 생존율을 얼마나 높여주는가를 고려한다. 이와 달리 신약 승인·허가는 약을 투여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에 생존기간 또는 생존율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가로 평가한다.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작아도 통계적 유의성(p값)이 있다면 약효가 있다고 판단한다. 약효의 정도나 약값과 상관없이 승인·허가가 이뤄지다 보니 제약회사들은 약효를 보다 확실하게 판단하기 위해 생존기간·생존율에 영향을 끼치는 고령, 뇌전이, 간 기능 이상 환자 등은 임상시험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나이 많은 환자도, 간 기능이 떨어진 환자도 허가된 약제를 투여 받는다.

둘째, 환자와 가족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른 상대적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제거하느냐다. 생존연장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더라도, 가격이 1,000만원 또는 1억원을 넘더라도 사용을 원하는 환자가 있다면 막을 수 없다. 사용 여부는 효과의 높고 낮음에 대해 환자가 느끼는 상대적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건강보험은 이로 인한 상대적 불평등을 제거·완화해줄 수 있지만 재원이 제한돼 있어 모든 약제비를 지원할 수는 없다.

셋째, 재원이다. 모든 고가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려면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획기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 결국 제한된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비용효과가 높은 약제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이유다.

넷째, 비용효과 기준을 누가, 어떻게, 무슨 근거로 정하느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년 생존연장에 필요한 항암제 약값이 1인당 국민소득보다 낮으면 사용을 ‘강력 추천’하고 세 배 이상 높으면 추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약은 그 사이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치료에 필요한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급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 제약회사에는 좋은 소식이지만 비용효과를 고려한 결정인지 의심스럽다. 비급여 약제들은 효과에 비해 약값이 너무 비싸거나 효과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보고된 연구결과들은 약제 가격과 실제 임상 효과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약값을 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임상효과에 따라 값을 정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약 약값에는 지난 수십년간 매우 가파르게 상승한 연구개발 비용이 반영된다. 임상효과만으로 약값을 정한다면 제약회사들은 이익이 많이 남을 약만 개발하고 희귀·난치질환 치료제를 굳이 개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항암신약을 개발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전 세계 제약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그치는 한국에서 원하는 약값을 받을 수 없다면 약을 판매하려고 할까. 실제로 가격 등의 문제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약들이 꽤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바라보는 약값과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임상효과가 높거나 높을 가능성이 있는 신약에 대해 비용효과가 적다거나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급여 결정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암환자들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비용을 국민과 건강보험 가입자가 모두 감당하라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해당사자인 국민·환자·정부·의사 및 제약회사들 사이에 적절한 양보와 타협, 때로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 국민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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