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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음악이란 또 하나의 언어가 지닌 아름다움

작가

경이롭고 아름다운 퀸 노래 기저엔

현실에 굴복하지 않은 프레디 있어

'부적응자 위한 부적응자' 자처하며

결국 위대한 '음악의 승리' 이뤄내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가 지닌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다. 잔지바르(현재 탄자니아)라는 변방의 나라에서 태어나 공항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던 프레디 머큐리가 천신만고의 여정 끝에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인생 이야기도 아름다웠지만, 나는 커다란 극장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퀸의 음악을 마음껏 커다란 볼륨으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치도록 좋았다. 퀸의 음악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무런 부연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그의 성적 정체성의 갈등과 에이즈로 인한 고통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감독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퀸의 음악에는 그의 인생 자체가 완벽하게 녹아들어가 있기에 그가 살아있는 동안 수없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의 강조는 그가 음악으로 이미 이루어낸 위대한 승리를 조금은 퇴색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을 마치 최신 히트곡처럼 흥얼거리는 10대, 20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퀸의 음악이 수십 년 전의 그 감동을 뛰어넘어 더욱 영롱한 울림으로 되살아나는 이 기분 좋은 ‘퀸 신드롬’을 다시 볼 수 없었을 테니까.



퀸의 음악을 들으면 가사와 음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감동을 주는지 알 수 있다. 가사 자체가 시처럼 소설처럼 희곡처럼 느껴지는 음악 ‘보헤미안 랩소디’는 난해하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곡이지만,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었던 파란만장한 프레디의 삶에 비추어 보면 이 곡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아름답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논리적 이해’를 뛰어넘어 ‘마음의 눈으로 비춰볼 때 비로소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극적인 하모니를 자아낸다. 걸핏하면 ‘파키스탄사람’이라는 놀림을 받고, 돌출된 치아와 입술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했으며, 불확실한 성적 정체성 때문에 홀로 괴로워했을 그의 외로움과 불안, 소외감. 이 모든 것들을 끝내 이겨낸 프레디 머큐리의 위대한 승리가 ‘보헤미안 랩소디’에 녹아 들어가 있다. “But I’m just a poor boy and nobody loves me. He’s just a poor boy from a poor family. Spare him his life from this monstrosity. (그러나 나는 가여운 소년일 뿐이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지.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불쌍한 소년일 뿐이겠지. 그의 삶을 이 괴물로부터 구해주기를.)” 이토록 슬프고 서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가사가 오히려 힘차고 긴장감 넘치는 선율과 어우러짐으로써, 우리는 프레디가 그 비극적 현실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정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로 들을 때마다 감동을 안겨주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또한 퀸의 공연 실황과 함께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퀸은 관객을 공연 속으로 이끌어 관객 또한 공연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 줄 알았다. ‘위 윌 락 유 We will rock you’의 장엄한 발구름 소리는 수만 명의 관객을 거대한 타악기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었고, 이 곡은 월드컵을 비롯한 수많은 경기 속에서 응원가로 불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부를 때 관객이 너무 많아 가사가 제대로 전달될까 걱정했던 프레디에게 관객들은 마치 ‘걱정말라’고 위로하듯 모두가 함께 ‘떼창’으로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관객이 노래를 들려주고 가수가 노래를 듣는 이 아름다운 역설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거대한 사랑의 파도가 가슴 속으로 밀려드는 듯한 눈부신 환상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퀸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으며 학창시절의 외로움을 견뎌냈는데, 영화 속에서 퀸이 자신들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내릴 때 내가 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부적응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들”이라고. 그들은 소외받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 되는 위대한 음악의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퀸의 노래를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가 지닌 최고의 눈부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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