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케다제약이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으로 단숨에 글로벌 8위 제약사로 도약하면서 국내 제약사들도 늦었지만 M&A 전략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는 올 들어 잇따른 글로벌 기술수출과 미국·유럽 진출이라는 성과를 적잖게 거두고 있으나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제약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1위 제약사 다케타제약은 최근 주주총회를 열어 아일랜드 희소질환 치료제 전문기업 샤이어를 인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사실상 샤이어 인수를 확정지으면서 다케다제약은 지난해 매출 17조원의 글로벌 19위 제약사에서 매출 33조원의 글로벌 8위 제약사로 부상했다. 미국과 유럽 위주의 다국적 제약사가 포진한 글로벌 10대 제약사에 일본 제약사가 이름을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케다가 샤이어 인수를 위해 지불한 금액은 약 65조원으로 지난해 다케다제약 매출 17조원의 4배에 달한다. 인수금액만 보면 일본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 중 최대 규모이자 글로벌 제약업계 사상 두 번째로 큰 빅딜이다.
금액이 워낙 큰 탓에 지난 5월 샤이어와 M&A 협상을 체결한 이후 다케다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글로벌 제약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려면 M&A가 필수적이라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막대한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다케다 주주 88%는 이번 M&A에 찬성표를 던졌다.
다케다의 샤이어 인수는 일본 제약사의 과감한 M&A 전략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글로벌 25위 제약사 중 일본 제약사는 다케다, 아스텔라스, 다이이치산쿄, 오츠카 4개사에 달한다. 글로벌 100위 중 일본 제약사는 18개사에 달하고 글로벌 의약품 매출 상위 100개 중 11개가 일본 제약사 제품이다.
반면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의 글로벌 순위는 초라하다. 한국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의 올해 매출을 1조5,000억원으로 잡아도 글로벌 80위권에 불과하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가 지난해 국산 의약품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돌파했지만 전체 순위에서는 아직 100위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본 제약 시장이 한국의 4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과 일본 제약산업의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올 들어 기술수출과 선진시장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과감한 M&A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에서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하는 M&A가 당장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면 국내 제약사끼리의 M&A라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오너 중심의 폐쇄적인 경영체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본부장은 “80조원에 달하는 일본 제약사가 공격적인 M&A를 발판으로 급격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일본은 단일 국가로 미국과 중국을 잇는 글로벌 3위 제약 시장으로 자리잡았다”며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공격적인 M&A로 신약 개발을 앞당기고 신약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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