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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어려 검고, 젊어 붉고, 늙어 하얀 것은?

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방방이 군불을 때고, 풍로에 따로 숯불을 피워 반찬을 하던 주부들에게 부엌에서 온종일 물이 끓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불을 쓸 수 있는 연탄아궁이는 나일론 양말 못지않은 복음이었다.”

연탄의 고마움을 작가 고(故) 박완서는 이렇게 썼다. 작가처럼 멋진 표현을 떠올리지 못한 사람들의 삶도 연탄과 가까이 맞닿아 있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광에, 담벼락에 가지런히 쌓이던 연탄은 긴 겨울나기의 시작이었다. 푸르스름한 불꽃을 살랑이는 연탄불로 밥을 짓고 물을 데우고 반찬을 만들었다.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낮에도 불을 살려 온기가 도는 안방에 모여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나눴다.

뜨겁게 타올랐지만 쇠락은 불현듯 다가왔고 가팔랐다. 아파트가 빠르게 들어서면서 주거문화가 바뀌고 가스·석유에 밀려 연탄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빼곡했던 연탄 더미와 달동네까지 실어나르던 손수레와 지게, 연탄재로 짓궂은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먼 기억 속의 추억이 됐다.

‘어려서 검고 젊어서 붉고 늙어서 하얘지는 건 뭐?’ 수수께끼의 정답을 아는 이들만의 관심사로 여겨졌던 연탄이 최근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얼마 전 정부가 연탄 가격 고시를 개정한 뒤 연탄의 소비자가격이 장당 700원에서 800원으로 오르면서부터다. 정부는 지난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오는 2020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하고 관련 예산을 줄여왔다. 2008년 장당 400원이던 연탄값은 10년 새 정확히 2배가 됐다.

라면보다 연탄 가격 오르는 것이 더 무섭다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2017년 연탄으로 겨울을 난 계층은 14만여가구다. 이 중 10만여가구는 월소득 25만원 미만의 에너지 빈곤층이다.



연탄 가격 인상에 따라 정부는 연탄쿠폰 지원금을 지난해 31만3,000원에서 40만6,000원으로 30% 올렸다. 연탄 400~500장쯤 살 수 있는 돈이다.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필요한 1,000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지원 대상은 6만3,000가구로 연탄을 때는 가정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속에 값도 오르면서 연탄을 나눠주던 온정도 식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후원받은 연탄은 43만5,000장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 줄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1994년 나온 안도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첫 시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연탄’이 아닌 ‘너에게 묻는다’가 제목이다.

1연 3행의 짧은 시에 담긴 시인의 물음은 변함없이 유효한 까닭에 더욱 쓰라리다. 2019년 새해는 매서운 추위와 함께 시작됐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연탄을 피워 몸을 녹인다. /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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