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8월 부임 이후 주로 강팀들과 겨뤄왔다. 벤투호는 코스타리카를 시작으로 칠레·우루과이·파나마·호주·우즈베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했다. 지난 7일 상대한 필리핀은 벤투호가 만나본 팀 중 최약체였다.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나온 팀은 아무래도 낯설어서였을까. 한국은 볼을 소유한 시간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90분간 득점은 후반 22분 ‘킬러’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터뜨린 한 방뿐이었다.
59년 만의 아시아 정복을 노리는 한국 축구가 또 한번 한 수 아래 상대와 맞닥뜨린다. 한번 경험한 만큼 이번에는 시원한 승리로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벤투호는 12일 오전1시 아랍에미리트(UAE) 알아인에서 중앙아시아 팀인 키르기스스탄과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2차전을 치른다. 키르기스스탄은 7일 중국과의 1차전에서 1대2로 역전패했다. 우리가 1대0 진땀승을 거뒀던 필리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6위, 키르기스스탄은 91위다. 한국은 53위. 필리핀과의 A매치는 39년 만이었고 키르기스스탄과의 A매치는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23세 이하 대표팀 간 대회인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1대0으로 겨우 이겼다.
벤투 감독은 필리핀전에서 후반 12분 기성용(뉴캐슬) 대신 황인범(대전)을, 후반 18분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대신 이청용(보훔)을 투입해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이른 선제골을 터뜨리지 못하거나 전반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조커’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승우(21·엘라스 베로나) 카드에 관심이 쏠릴 만한 이유다.
이승우는 무릎 부상으로 낙마한 나상호(광주)의 대체 선수로 긴급 호출됐고 7일 UAE에 도착해 그날 바로 필리핀전 벤치에 앉았다. 이승우는 벤투 감독 부임 후 1경기 출전이 전부다. 지난해 9월 코스타리카전에서 후반 38분 손흥민(토트넘)을 대신해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호주 원정 2연전 때는 소집 명단에 들지도 못했다. 같은 자리에 경험 많고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많다는 이유였다. 그때까지도 이탈리아 2부 소속팀에서 입지가 불안하던 이승우는 최근 6경기 연속 선발 출전에 지난해 12월 말 리그 첫 골까지 뽑으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벤투 감독은 결국 예비 명단에도 없던 이승우를 전격 발탁했다. 이승우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때도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최종 엔트리에 깜짝 발탁된 경험이 있다. A매치 기록은 아직 7경기 0골. 아시안게임에서는 결승 일본전 연장전 득점으로 금메달에 기여했다. 당시도 후반 교체로 들어가 일을 냈다.
극단적 수비 전술을 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도는 수비 뒤 공간을 노리는 침투 패스인데 필리핀전에서는 침투 패스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전에 패스 실수로 공격이 끊기거나 개인 기술로 바로 앞 수비수 1명을 떨쳐내는 것조차 힘겨웠기 때문이다.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이승우는 컨디션만 따라준다면 좋은 해법일 수 있다. 동료를 이용한 2대1 패스로 문전까지 침투하는 것은 이승우가 즐기는 공격 방법이기도 하다.
2차전은 중원사령관 기성용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다. 1차전에서 기성용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준 황인범이 이번에도 기성용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황의조-황희찬(함부르크) 듀오는 2경기 연속 골 합작을 노린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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