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한 주였기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 골프에 만족하고 있어요. 빨리 포트러시로 가서 코스를 밟고 싶습니다.”
세계 랭킹 158위 신예와 벌인 우승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지만 로리 매킬로이(36·북아일랜드)는 패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다가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디 오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17일(이하 한국 시간)부터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GC(파71)에서는 제153회 디 오픈이 나흘간 열린다. 올해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매킬로이가 골프 역사상 여섯 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기록을 달성한 뒤 찾은 디 오픈의 개최지가 마침 홈 코스다. 이보다 더 주목받기 힘든 홈커밍이다.
매킬로이는 로열 포트러시에서 1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랐다. 16세에 이 코스에서 61타를 쳤다. 하지만 2019년 이곳에서 치른 디 오픈 때 1라운드 1번 홀 티샷부터 아웃오브바운즈(OB)를 내고 쿼드러플 보기를 적더니 마지막 홀에도 트리플 보기를 했다. 첫날 적은 8오버파에 발목 잡혀 컷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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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뒤 ‘잘해야 할 동기’를 잃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6년 전 홈 코스에서 겪은 수모를 씻을 기회가 다가오자 다시 골프화 끈을 조인 모양새다.
14일 스코틀랜드 르네상스 클럽(파70)에서 끝난 ‘디 오픈 전초전’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매킬로이는 13언더파 267타로 2타 차 공동 2위를 했다. 크리스 고터럽(미국)과 공동 선두로 출발해 버디 3개와 보기 1개로 2타를 줄였으나 고터럽이 4타나 줄이는 바람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30승을 다음으로 미뤘다. 전반에만 2타를 줄여 2년 만의 제네시스 스코티시 타이틀 탈환 기대를 높였지만 후반 들어 ‘올 파’에 그쳤다. 퍼트가 조금씩 짧거나 길었다. 반면 지난해 5월 머틀비치 클래식에서 투어 첫 승을 거둔 뒤 조용하던 1999년생 고터럽은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린 16번 홀(파5)에서 정확한 ‘범프 앤 런’ 어프로치에 이은 3m 버디 퍼트 성공으로 승기를 잡았다. 우승 상금은 157만 5000달러(약 21억 7000만 원). 공동 2위 상금은 78만 8175달러(약 10억 8000만 원)다. 고터럽은 세계 49위로 껑충 뛰었고 매킬로이는 세계 2위를 유지했다.
매킬로이는 “티샷과 아이언 샷이 다 흡족하다. 모든 것을 있어야 할 곳으로 가져온 느낌”이라고 했다. 예측이 어려운 바람과 불규칙한 그린 등 까다로운 환경을 잘 견뎠다. 마지막에 퍼트가 잘 떨어져주지 않았지만 나흘간 퍼트로 만든 이득 타수 부문에서 전체 5위일 만큼 안정적이었다.
5월 PGA 챔피언십 때 ‘드라이버 부적합 판정’ 기사가 나간 후 기자들을 멀리했던 매킬로이인데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자르고 나온 이번에 앙금을 스스로 털어버린 모습이다. 공동 2위는 마스터스 뒤 석 달 새 최고 순위이고 나흘 내내 60대 스코어는 올해 두 번째다.
매킬로이는 11번 홀(파4)에서 티샷이 굵은 나무 밑에 떨어져 스탠스가 안 나왔지만 ‘왼손잡이 스윙’으로 볼을 페어웨이로 빼내 파를 잡기도 했다. 그는 “마스터스 직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말로 11년 만의 디 오픈 우승이자 메이저 6승째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베팅 업체들이 보는 디 오픈 우승 확률 1위(2위는 매킬로이)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지난해 디 오픈 챔피언 잰더 쇼플리(미국)와 함께 9언더파 공동 8위에 올랐다. 김주형은 1타를 잃어 6언더파 공동 17위로 마쳤다. 대기 1번이던 김시우가 어니 엘스(남아공)의 불참에 막차를 타면서 올해 디 오픈 한국인 출전자는 임성재·안병훈·김주형·최경주에 일본파 송영한까지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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