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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 메카' 성수동의 눈물] 공임 오르자 해외로 짐싸…"중국산 구두 국내 점령 시간문제"

브랜드업체 값싼 인력 찾아 이전

하청 공장 매출 최대 70% 줄어

인건비에 원부자재도 올라 이중고

연내 4대보험·퇴직금 보장 추가땐

10곳 중 9곳은 살아남지 못할 것

서울 성수동 내 한 부분 공정 업체에서 제화공이 신발을 재봉하고 있다./변수연기자




# “1월이 성수동 비수기는 맞아요. 그래도 지난해 이맘때에는 봄여름 시즌 물량 주문이 몰리면 아침 8시부터 밤 8~10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고요. 지금은 일이 없어서 일주일에 3일 일하고 4일 노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16일 오후3시께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제화공장이 몰린 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창 일할 시간인데도 공장은 주인이 불만 켜놓고 자리를 비웠거나 일찍이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을 찾아가봐도 일이 없어 쉬는 제화공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국내 제화산업의 본산인 성수동이 멈췄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제화 공임이 지난해 초 15~20% 인상되며 대형 구두 브랜드들이 국내 생산량을 크게 줄이자 일주일에 절반은 공장을 놀리거나 아니면 아예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불경기에 공임까지 오르니 브랜드 업체 줄줄이 떠나=기자가 이날 만난 성수동 내 크고 작은 완제 업체 또는 부분공정 업체의 대표는 제화 공임 인상 이후 매출이 적게는 절반에서 70% 가까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제화 공임 인상이 시장 상황에 맞지 않게 급격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패션 시장 전반의 침체로 브랜드 업체들이 주문량을 줄이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벌어지며 생산 불안을 높이니 브랜드 업체가 국내 생산량을 줄이고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생산량이 줄어들자 ‘미소페’의 하청공장 중 하나인 ‘쏠레’가 지난해 10월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업체들의 ‘성수동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미소페의 하청공장 중 하나는 중국으로 공장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형 패션업체 신발을 만드는 한 완제 업체의 대표 홍성호(가명)씨는 “지난해 대목인 추석을 앞두고 공장을 풀가동해야 하는 여름에 공장에서 일하던 제화공들이 한꺼번에 예고도 하지 않고 2주 넘게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납기일을 못 맞춰 손해가 막심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그와 계약한 브랜드 업체는 생산량을 줄였다. 홍씨는 “월 4,000족은 생산해야 수익이 나는데 현재 그 절반인 월 2,000족만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원부자재 값도 상승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인건비 비중은 처음으로 원부자재 값 비중을 넘겼다.

◇생산 불안 부른 파업 “30~40년 일한 동료가 이렇게 나올 줄은…”=성수동에서 파업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4월 대형 제화 업체인 ‘탠디’의 하청업체 소속 제화기술자들이 ‘민주노총 제화지부’를 결성해 공임 인상과 퇴직금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인 게 단초가 됐다.



성수동의 공장 대부분에서 일하는 제화공들은 ‘객공(客工)’이라고 불린다. 봉제공장 업계에서 근로자와 구별하기 위해 불러오던 관행으로 근로자의 지위를 갖지 않기 때문에 4대보험 가입, 퇴직금 등이 제공되지 않아 왔다.

같은 해 5월 탠디와 극적으로 타결했지만 민주노총 제화지부는 성수동 전역에서 집회를 열고 다른 하청공장의 노동자들을 가입자로 받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공장에서는 비정기 파업을 벌였다. 이렇게 공임 인상 이슈는 지난해 성수동 전체로 퍼졌다.

홍씨는 “30년을 알고 지낸 제화공들에게 납기일을 맞춰달라고 사정해도 파업을 이어갔다”며 “우리 부부는 월 400만원을 버는데 월 300만~500만원을 받는 제화공들에게 4대보험·퇴직금까지 지급하려면 연 수억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알고 지내던 공장주 가운데 최근 폐업을 했거나 폐업을 위해 생산을 중단한 곳만 3군데다.

◇대형사 이어 영세업체도 폐업 도미노…값싼 중국산 점령 시간문제=홍씨의 사례처럼 근로자 15~20명 규모의 완제 업체는 그래도 성수동에서 큰 규모에 속한다. 완제 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는 부분공정 업체는 2~3명이 일하는 곳들도 많다. 완제 업체들이 휘청이자 그 여파는 고스란히 소규모 공장에까지 퍼지고 있다. 현재 성수동에 매물로 나온 공장들만 50군데가 넘는다.

신발 아웃솔과 갑피를 재봉하는 단계(아리안스)를 담당하는 업체의 이현필 대표는 “성수동 내에 우리 같은 업체가 6군데 있는데 연내로 2곳이 문을 닫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제화 업계는 연내에 있을 추가 인건비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일부로 최저임금이 한번에 10.9%로 대폭 오르면서 이에 따른 공임 추가 인상에 민주노총 제화지부가 주장하는 퇴직금·4대보험 보장까지 연내 이뤄지면 성수동 내 90% 이상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 브랜드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 가운데 국내 생산량 비중이 20%대로 주저앉은 곳도 있다”며 “이대로 성수동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면 그 자리는 값싼 중국·동남아산이 대체해 대한민국 제화산업의 근간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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