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말 A법무법인은 법인 상표를 북한에 직접 등록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통일부에 접촉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관계가 달라졌다고 판단해 북한 내 지식재산권 등록 가능성과 방법을 확인한 다음 밀려드는 기업들의 의뢰 업무를 처리하자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 입장이라 상표권 신청료도 유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시도조차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수소문 결과 정작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엔 제재는 명목상 이유일 뿐 실제로는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적대국’ 낙인이 원인이었다.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북한 지재권 직접 등록 절차는 아직도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표면적인 이유 중 하나는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이다. 특허권은 북한 발명총국에, 상표권은 북한 상표 및 공업도안처에 각각 등록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이 북한에 지급하는 등록료·신청료 등도 제재 대상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게 기업들을 향한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핑계’라는 게 대다수 법조인들의 지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금까지 채택한 대북 제재 관련 어떤 결의에도 지재권 교류를 직접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재권 교류는 예외 조항이어서 영국·독일 등 상당수 서방 국가는 물론, 심지어 미국까지 북한에 1,400여 개 상표권과 50개 이상의 특허권을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북한이 한국을 적대국으로 분류하는 것을 근본 원인으로 분석했다. 북한 상표법 제21조 10항에 ‘북한을 비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나 지역에서 등록을 신청한 표식’은 상표로 등록할 수 없게 한다. 그 대상은 한국과 일본만 해당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같은 법 제44조에는 상표 없이는 북한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수출·입할 수 없게 막고 있어 남북 경협이 재개되더라도 지재권 미등록 문제가 국내 기업의 북한 진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특허권의 경우 북한 발명법에 비우호적 국가에 대한 규제가 명시돼 있지 않는데도 한국인 단독 출원은 물론 북한 사람과의 공동 출원도 불허한다. 원칙적으로는 남북이 모두 가입돼 있는 마드리드 시스템을 통해 상호 출원이 가능하지만 한국인이 참여한 해외 합자회사 명의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최근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적국 리스트에서 지운 것은 물론 대통령이 직접 제재를 풀어 달라고 각국에 호소하고 다니는 한국만 ‘비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로 정의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미래 남북 경협을 대비해 제3국이나 중국 사업자의 이름으로 북한에 우회 등록을 시도하고 있다. ‘초코파이’와 ‘신세계’는 그 대표 사례다. 그러나 이마저도 치앙쭈(한국기업 상표를 무단 선점하는 사업자), 치앤커(상표권 대량 보유자) 등 중국인들의 악질적 선점 때문에 녹록지 않다. 이미 등록된 ‘K-MART’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상표 등록이 거부된 ‘E-MART’를 비롯해 국내 기업 전체 출원의 85%가 선등록 국제 상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중국은 북한에 4,330여 건의 국제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북한 상표법에는 무효신청 제도가 없어 중국인 등이 한번 선점하면 이를 번복하기 매우 어렵다. 국내에서는 북한의 지재권 데이터베이스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 이미 선점된 상표나 특허가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되는 것은 물론 데이터베이스의 존재 여부도 아는 기업도 없다. 북한 관련 법무를 준비 중인 국내 한 로펌의 변호사는 “북한에 미리 상표를 등록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의 문의는 꾸준히 있지만 중국 사업자를 소개시켜 줄 수도 없고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북한의 호응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지재권 관련 실무 협의 일정도 잡지 못한 상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 내부적으로 ‘한국 기업은 등록시키지 마라’는 내부 지침이 지금도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며 “지재권은 유엔 제재 부담도 적고 기업들이 시급한 상황임도 알고 있기에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교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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